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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깊이와 재미에 '풍덩'… 내 더위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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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지에 가져갈 한 권의 책] [2] 소설

여름 휴가지에 가져갈 한 권의 책, 지난주 '논픽션'에 이어 이번엔 '소설'이다. 조선일보 문학팀이 순문학, 장르문학을 4권씩 골랐다. 순문학은 시대를 아우르는 명작으로, 장르문학은 이야기의 재미를 선사하는 신간으로 추렸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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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게 되는 문장… 상 받은 이유 있네]


조선일보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69쪽 | 1만3000원

지난해 동인문학상 수상작 '바깥은 여름'은 단편집은 잘 안 팔린다는 통념을 깨고 20만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애란 소설은 간결한 문체와 감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를 이야기 속의 한 장면으로 빨아들인다. 연극 무대 위에 한 사건이 등장하는 환상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이웃의 애도는커녕 어처구니없는 오해 속에서 슬픔을 견디려 애쓰는 역설적 장면 묘사가 대표적이다.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 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그러자 그 꽃이 조화(弔花)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 놓은 국화 같았다.'

조선일보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 송은경 옮김 | 민음사
314쪽 | 1만3000원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의 '남아 있는 나날'은 1989년 출간돼 영국 맨부커상을 받은 뒤 영어권에서만 100만부 넘게 팔렸다. 1993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소설 제목은 '추억, 흔적, 잔해'처럼 과거 지향적 의미를 지니지만, 동시에 '하루의 저녁'처럼 남은 현재를 뜻하기도 한다. 대영제국 시대의 귀족 가문에 고용된 집사의 회상을 통해 전개된다는 점에서 복고풍(復古風) 소설로 읽힌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 주인공이 저녁을 맞아 일생을 되돌아보고 평가하는 노년기를 음미해 새로운 삶의 의지를 깨닫는 데서 눈부신 소설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 680쪽 | 1만4800원

'오르부아르'는 2013년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작이다. 공쿠르상 수상작 중 이례적으로 프랑스에서만 100만부 넘게 팔린 뒤 30여 개국에서 번역됐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두 젊은이를 통해 전후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좌충우돌하면서 풍자했다. 작가는 "모험소설이자 사회소설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며 "독자들이 소설 '삼총사'를 읽을 때처럼 즐거워한 뒤 국가와 사회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밝혔다. 국가가 빈민으로 전락한 참전 군인들을 홀대한 역사를 들추어냈다. 전사자 추모와 유해 발굴 사업도 돈벌이에 이용된 탐욕의 시대상도 그려냈다.

조선일보

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체 지음 | 박현주 옮김
그책 | 438쪽
| 1만3000원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이달 초 영국 '황금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이다. 원래 1992년 맨부커 문학상의 전신인 부커상 수상작.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맨부커 문학상 주최 측이 기존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을 고르기 위해 전문가 심사와 독자 투표를 거친 끝에 황금 맨부커상을 안겼다. "매 페이지마다 위대한 휴머니티로 쓰인 아름다운 소설"이란 평가를 받았다. 원작은 1996년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2009년 처음 나온 한국어판은 지난 1월 개정판을 냈다. 제2차 대전 종전 무렵 얼굴을 심하게 다쳐 정체가 모호한 '영국인 환자'와 그를 보살피는 캐나다인 간호사를 중심으로 다국적 인물들이 등장해 전쟁으로 훼손된 인간성 회복을 다룬 소설이다.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 잘 팔린 이유 있네]

조선일보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 김은모 옮김
엘릭시르
| 448쪽 | 1만4500원

자고로 독서가 체온을 낮추려면, 살인 사건이나 좀비 떼 정도는 출몰해줘야 한다. '시인장의 살인'엔 둘 다 있다. 지난해 일본 출간 당시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등을 차지한 데뷔작. 대학교 동아리 여름 합숙 장소에 난데없는 좀비 무리가 습격하고, 펜션에 고립된 상태에서 밀실 연쇄 살인이 터진다. 잔인하게 찢어발겨진 시체와 '잘 먹겠습니다'라 적힌 쪽지. "읽어본 적 없는 미스터리"를 노렸다는 작가의 말은 사실일까? 언제나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조선일보

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 배명자 옮김
위즈덤하우스
| 460쪽 | 1만4500원

모든 인간은 증오의 보균자이나, 누군가를 끔찍이 죽이고 싶어도 법 때문에 그러질 못한다. 만약 단 하루, 단 한 명의 공적(公敵)에 대한 살인이 공식 용인된다면, 그리고 만약 그 단 한 명이 내가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은 보여주고 있다. 10유로만 내면 누구나 죽이고 싶은 자를 추천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개설된다. 8월 8일 오후 8시 8분, 이른바 '8N8' 게임이 시작된다. 소셜미디어에 포획된 세계의 이면과 긴박한 탈주의 액션이 맞물리며, 이 모든 게 사회심리학적 연구의 일환이었다는 반전을 향해 베를린 시내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천공의 용소년

허문일·김동인 외 지음 | 아작 | 116쪽 | 5500원

한국 근대 SF 단편선 '천공의 용소년'은 황당무계한 상상력만으로 피식 웃게 하는 괴작. 두 화성인이 지구로 탐험을 떠나는 표제작도 그렇지만, 김동인의 1929년 발표작 'K박사의 연구'는 진귀한 발견이다.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식량난 극복을 위해 인간의 똥을 정제한 이른바 '○○떡' 제조 연구를 진행하는 K박사. 기자들을 모아놓고 연 시식회 장면이 가관이다. "몇 사람은 저편으로 '변소! 변소!' 하면서 달아나고,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중독되었다고 의사를 청하라고 야단인 가운데…" 난리법석이 난다. 실패에 낙담하는 K박사. 소고기인 줄 알고 뜯어 먹던 음식이 개고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 토해버리는 K박사. "아까, 그, 그? 똥 먹던?" 우스우면서도 저자의 의중을 추리케 하는 K박사는 한 편의 부조리극을 완성한다.

조선일보

타오르는 세계

아이작 마리온 지음 |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672쪽
| 1만5800원

좀비라고 전부 구역질 나는 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좀비가 인간성을 되찾는 과정을 담은 '타오르는 세계'는 동명 영화로 제작돼 흥행한 전작 '웜 바디스'의 후속작. 인간 연인 줄리와 청년 좀비 R의 해피엔딩으로부터 두 달 뒤, 새로운 위협과 모험이 시작된다. 전작이 '좀비 로맨스'라는 희귀한 장르를 개척했다면, 이번엔 세계관의 스케일을 더 키웠다. 민간군사기업 잔당의 습격, 도주의 연쇄, 뜻밖의 도움. 그 과정에서 R의 그림자, 인간이었을 당시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나는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다"라는 R의 외침은 좀비를 응원케 하는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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