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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사외이사 추천은 일단 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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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의 7%를 차지하는 '큰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이 17일 공개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자신이 주식을 가진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행동 지침을 일컫는 말이다. 이번에 공개된 스튜어드십 초안은 지난 4월 공개된 고려대 산학연구단의 용역보고서보다 훨씬 수위가 낮다는 평이다. '연금 사회주의' '기업 경영권 침해' 등 거센 비판이 나오자 정부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다. 이날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정부는 경영 참여로 분류되는 사외이사·감사 추천,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은 추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민간 위탁운용사를 활용한 주주 활동, 중점관리사안 확대, 중점관리기업 공개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는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26일 확정된다.

'사외이사 추천' 빠져… 한발 물러선 스튜어드십 코드

정부안이 당초 예상보다 한발 후퇴한 것은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와 현행법상 한계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국민연금이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재계 등에서는 '대규모 낙하산 인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외국에선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을 제대로 감시해 장기수익률을 높이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데 비해, 현 정부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통로로 활용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투자자 및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5%룰(특정 기업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는 투자자는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에 신고)' 등 투자자의 경영 참여에 대한 제약을 두고 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뿐 아니라 상법, 자본시장법이 상당히 기업 친화적"이라고 한계를 설명했다.

수탁위원회 신설… '독립성 한계'

스튜어드십 코드가 당초 예상보다 한발 물러났지만, 독립성 확보 등 세부적인 장치가 미진하다는 평도 많았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의결권 관련 검토·결정 기구)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수탁위원회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수탁위원회는 중요 의결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주주 활동 이행 여부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주주 활동 기준·절차 마련, 투자 제한·변경 등 주요 정책은 상위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독립성 결여'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4개 부처 차관, 사용자·근로자 대표(각 3명) 등으로 구성돼 전문성·독립성·중립성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수탁위원회 구조는 '옥상옥'"이라고 말했다.

“의결권 위탁해도 국민연금 뜻대로 될 것”

민간 운용회사가 국민연금으로부터 위탁받은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하는 방안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국민연금의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결국 ‘눈치 보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자산 약 131조원(1분기 기준) 중 54%는 직접 운용하지만, 나머지는 민간 운용사에 위탁해 운용하고 있다. 현재는 위탁 주식에 대한 의결권도 모두 국민연금이 행사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초안에서 2019년 상반기부터 위탁 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민연금이 의결권 찬성·반대 방향을 주주총회 이전에 공시하고, 위탁운용사 선정 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여부에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해 ‘무늬만 위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박경종 컴플라이언스 실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사전 공시하면 당연히 민간에 영향력을 준다”며 “대부분 운용사의 경우 임직원이 적은 소형사인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가점을 주면 이 소형사들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국민 노후자산 보장’이라는 연금의 기본 목적이 빠져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인학 기업법연구소 수석위원은 “일본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원칙에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는데 우리는 이런 점이 미진하다”며 “국민연금이 어떻게 국민의 노후보장 소득을 적절히 관리해야 할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업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이야기만 많다”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고객의 자산을 수탁·운용하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의 중장기적 성장과 고객 자산 이익 향상을 위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행동 지침.







양모듬 기자;안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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