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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혁신 실패의 대명사 `노키아`, 재기할 수 있었던 비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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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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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192] 핀란드 글로벌 기업 노키아는 혁신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한때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지배했지만 2000년대 후반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밀리기 시작했다.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 운영 체제 심비안을 고집하다 결국 2013년 핵심 사업이었던 모바일 사업부를 매각하게 된다.

하지만 노키아는 현재 견실한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로, 전 세계 시장 중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모바일 사업부를 매각한 뒤 통신장비 산업에서의 기회에 주목했고, 공격적인 인수·합병 등 적극 투자해온 결과다. 뒤늦게나마 열성적으로 혁신을 이뤄내 재도약에 성공한 것이다.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의 꾸이 응우옌 후이(Quy Nguyen Huy) 교수와 핀란드 알토대의 티모 뷰오리(Timo Vuori) 경영대 조교수는 노키아의 위기였던 2007~2013년 핵심 경영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연구했다. 9명의 이사와 19명의 상위 경영진 등 120명도 인터뷰했다. 이들은 최근 이 같은 연구 결과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하면서 2012년 새로 임명된 이사회의 감정적인 전략이 변화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후이 교수와 뷰오리 조교수는 먼저 이사회가 새로운 대화 규범을 정립함으로써 기존에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억압하던 문화를 제거했다고 언급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전까지 노키아 경영진은 이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다. 이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출시에 따른 시장 변화와 위협의 심각성에 대한 토론도 제한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2년 새로 임명된 리스토 실라스마(Risto Siilasmaa) 회장은 이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몇 가지 황금룰(golden rules)을 정했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항상 상호 간에 존중과 예의를 표하도록 해 편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의견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 나오면 다음 회의에서 사과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후이 교수와 뷰오리 조교수는 이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대안이 제시됐고 이것이 기존 핵심 전략에 대한 감정적인 집착을 줄여줄 수 있었다고 제시했다. 후이 교수와 뷰오리 조교수에 따르면 당시 노키아의 경영진은 당시 심비안 운영체제 기반의 전략이 바뀔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지만 "감정적인 부담"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견·대안의 부재는 좋은 핑계거리로 작용했다. 노키아의 새 이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파악하고 거대한 양의 분석·검토 작업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시장 변화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데이터에 집중하게 유도(nudge)한 것이 세 번째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개인의 선호나 직감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2011년 노키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교체하지만 이때도 최선의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대세인 안드로이드 대신 윈도를 선택한 것이다. 후이 교수와 뷰오리 조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노키아의 한 경영진은 "다른 기업과 똑같은 레고(안드로이드)를 선택하기보다는 윈도를 선택해야 시장에 (현재와 같이 지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면서 "이성적으로는 윈도가 실패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새 이사회는 주요 전략을 수립할 때 데이터를 반영하게 만들었다. 핵심 매출 등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반영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연구에 참여한 한 이사는 이를 통해 "개인적인 기대 뒤에 가려져 있던 합리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노키아는 안드로이드로 바꾸지 않았다. 데이터에 기초한 철저한 대안 검토 및 시장 분석 결과 통신장비 산업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애초에 경영진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중하게 검토되지 않았던 선택지였다. 노키아는 지멘스(Siemens)와 합작해 만든 회사의 지분을 2013년 100% 인수하고 2015년엔 알카텔-루센트(Alcatel-Lucent)를 인수하는 등 통신장비 기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후이 교수와 뷰오리 조교수는 이 같은 감정적인 측면에서의 전략 변화가 혁신을 가로막던 기업문화를 없애고 자발적인 혁신을 추구하게 만드는 문화의 근간이 됐다면서 직원들의 감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직원들의 감정은 부드러운(soft) 것,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고 기업의 핵심 전략은 격식 있는(hard) 것, 그래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서로 연관돼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훈 기업경영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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