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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레이더M] 대약진 운동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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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1950년대 중반 경제부흥을 위한 대약진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남긴 희대의 명언(?)이다.

의도는 선했다. 중국 인민을 괴롭히는 4대 해로운 생물로 모기, 파리, 쥐, 참새가 선정됐다. 특히 참새는 곡식을 먹어치우는 까닭에 농업 생산량을 떨어트리는 공적 1호로 낙인찍혔다. 이 덕분에 1958년 한 해에만 중국에서 2억마리가 넘는 참새가 학살됐다. 대가는 참혹했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더 큰 재앙인 메뚜기 등 해충이 창궐했다. 여기에 농기구를 녹여 철강을 생산하는 희대의 바보짓까지 가세하고 홍수, 가뭄 등 기상재해가 겹치며 대기근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수천만 명의 중국인이 굶어 죽었다.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대약진운동의 실책을 덮기 위해 마오쩌둥은 1960년대 중반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이 덕분에 1980년대 이후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중국보다 잘사는 경험을 해보는 행운을 누렸다.

"저 기업은 해로운 기업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기업 정서가 온 나라를 뒤덮으며 정부 부처가 경쟁적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나섰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전 정권의 국정 농단 과정에서 정치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대기업 총수들이 기소된 것도 모자라 기업을 압박하는 창구 지도가 규제 권한을 지닌 정부 각 부처서 일제히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미 법과 제도로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은 물론 소득, 고용 등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이 과연 해로운 새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일경제

곡식 낟알을 쪼아먹는 해로운 행위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핍박해 박멸하려 드는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을 노리고 있는 현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기업이 축적해 온 소중한 산업자본이 허무하게 소수의 '약탈적' 금융자본에 털릴 위기에 처해 있다. 현 정부가 이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꼴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이대로 가면 대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며 스러질지도 모른다. 국내 경제가 먹거리 부족으로 굶어죽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로 인해 문화대혁명 같은 정치적 대격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어느 날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광복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하던 우리 경제가 고통스러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 오래다. 저성장에 따른 고통의 화살을 과거 고속 성장 주역인 대기업에 돌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시점이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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