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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밀착취재] 자살 연상시키는 낙서로 얼룩진 생명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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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다리의 희망 글귀 48개 중 45개에 낙서 흔적/ 자살을 부추기는 낙서부터 성적인 표현까지 눈살 찌푸려/ 서울시 "유지보수 하지만 낙서하는 관광객 완전히 막기 힘들어"

세계일보

26일 서울 마포대교에 누군가가 새기고 간 낙서. '별일 없었어?'라는 문구에 '여친이랑', '응 있었어'라는 낙서가 돼 있다.


“별일 없었어?”

“여친이랑”

투신자살 1위라는 오명을 가진 서울 마포대교의 한 자살예방 글귀 "별일 없었어?"에 유치한 낙서가 달렸다. 누군가는 검은 펜으로 "여친이랑"이라며 유치한 흔적을 남겼다. 이처럼 자살 예방을 위해 생명의 다리로 다시 태어난 마포대교는 시민들의 낙서로 얼룩져 있었다. 성적인 표현은 기본이고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말과 그림 낙서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2012년 서울시는 마포대교에 48개의 삶에 대한 희망이 담긴 글귀를 새겼다. 자살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돌리기 위해서다. 6년의 세월이 지날 동안 자살 예방 글귀에는 수많은 낙서가 달렸다.

“그래서 결국”이라는 문구에는 누군가가 “죽었습니다”란 절망적인 덧글을 달아놨다. 또 “그런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라는 문구에는 “없을 거예요”라는 글씨를 새겨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놨다. 심지어 다리 중간에는 사람이 목을 매달고 있는 그림 낙서가 보였다. 심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본다면 자칫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낙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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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마포대교에 누군가가 새기고 간 낙서. '그래서 결국'이란 문구에 '죽었습니다'라고 낙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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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대교에 새겨진 자살을 연상시키는 그림 낙서.


성적인 표현과 그림도 눈에 띄었다.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이란 글귀는 낙서로 인해 성(性)적으로 응용됐고 “한남”, “야동” 등 자극적인 단어도 상당수 새겨져 있었다. 특정부위나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그림 낙서까지 쉽게 볼 수 있었다. 마포대교를 따라 조깅을 즐기던 한 외국인은 민망한 그림들을 마주하자 고개를 기울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포대교가 ‘낙서의 다리’로 바뀐 건 희망을 담은 자살 예방 글귀들이 인터넷에 알려지며 관광을 목적으로 다리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리 한편에 마련된 화장실 벽엔 ‘몇 월 며칠 XX 왔다 감’이라는 개개인이 남긴 흔적들로 도배돼 있었고 다리에도 ‘A♡B’ 같은 ‘애정형’부터 ‘취업하게 해 주세요’ 같은 ‘소원형’, 아이돌 이름을 담은 ‘팬심형’ 등 검은 펜으로 새겨진 각종 낙서가 가득했다. 일부 낙서는 라이터 불로 다리를 그을려 새겨져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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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 새겨진 일부 낙서는 심적으로 불안한 이들의 자살을 부추길 수 있었다.


마포대교에 있는 48개의 자살예방 글귀 중 낙서가 없는 것은 단 3개에 불과했다. ‘당신은 지구에서 하나밖에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란 글귀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복숭아는 천도 복숭아’, ‘무가 울면 무뚝뚝’이란 글귀가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다리는 여전히 자살 명소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전국 20개 다리에 ‘SOS 생명의 전화’를 운영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2011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전화 상담이 가장 많이 걸려온 다리는 ‘마포대교’였다. 마포대교에서는 7년간 4534건의 자살 상담전화가 걸려왔는데 이는 다리에서 이뤄진 상담의 70%에 달했다. 다리에서 투신하는 자살 수는 계속 줄고 있지만 투신 자살 1위라는 마포대교의 오명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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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화장실 벽면에 새겨진 낙서들.


서울시는 유지관리를 하고 있지만 관광명소가 돼 낙서하는 이들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마포대교가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됐고 글귀 사이사이 낙서하기 좋은 위치가 있어 낙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3월 외부 업체를 고용해 여의도 방향 다리 상단부분은 락스로 낙서를 지우는 작업을 했고 나머지 낙서도 제거 계획”이라며 “다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공시설물 등에 허가 없이 낙서를 하면 그 정도에 따라 재물손괴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글·그림=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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