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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박정호의 창업실전강의]〈15〉창업 선입견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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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 중 하나는 남다른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기존 기업이 생각지 못한 기술이나 서비스를 창안해 냈다면, 보다 쉽게 창업을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업에 있어 아이디어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창업을 통해 성과를 내는 방법은 기술이나 아이디어 말고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초기 창업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초기 창업가들은 별다른 기술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기 창업가들이 선택한 대표적인 창업 분야가 바로 유통과 물류 분야이다. 해방과 함께 국내 산업 시스템이 일순간 마비됐다. 1940년대 해방 이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조업 자본의 90% 이상이 일본 자본이었다. 제조업 분야 전문 기술자 역시 80% 이상이 일본인이었다. 따라서 이들 일본인이 일시에 모두 사라진 시점에는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적시에 공급받기 어려워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은 '남한은 농업 중심으로, 북한은 공업 중심으로' 구분된 산업구조를 만들었다. 해방과 함께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으로부터 전력, 비료, 지하자원 등의 교역이 어렵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주요 생필품의 가격이 폭등했고, 전반적인 물가 역시 급격히 상승했다. 이때 중국과 한국 상인들은 양 국가가 교역을 할 경우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음에 주목한다. 당시 중국에 있는 일본인들 역시 세계대전 패망으로 인해 공장뿐만 아니라 자재 및 재고 등을 그대도 두고 급히 본국으로 귀국했다. 따라서 일본인 공장에는 많은 군수품, 공산품, 생필품 등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중국 상인들은 일본인 공장에 남겨진 각종 생필품과 공산품을 활용했다.

당시 해안 지역 도시의 중국 상인들은 이들 물건을 한반도에 가져가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흔히 '정크선(Junk)'이라 불리는 무동력선에 물건을 싣고 와서 한국과 교역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중국과 전개된 무역을 속칭 '정크무역'이라 부르게 됐다. 국내 상인들 역시 이들 중국 상인과 거래할 유인은 충분했다. 당시 무역은 주로 인천항에서 전개됐다. 인천에서 중국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해 되팔아 손쉽게 10배 가까운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더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정크무역 수행 과정에서의 대금 결제 방식이다. 해방 이후 불안정한 국내 통화로 대금을 결제하려 해도 중국 상인들이 이를 거절했다. 달러와 같은 외화는 더더욱 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상인과 국내 상인이 대금 결제 방식으로 선택한 방법은 현금이나 어음이 아닌 현물로 이뤄졌다. 즉 20세기에 물물거래를 수행한 것이다. 당시 중국 상인들이 주로 싣고 오는 물품은 농산물, 생필품, 공산품 등이었다. 이들 물건을 구매한 한국 상인들의 대금 결제 수단은 주로 오징어와 새우, 미역과 같은 해산물, 광석과 같은 지하자원이었다.

당시 인천항에서 물물교환으로 수입품을 구매해 내륙 지역에 비싼 값에 재판매하는 물류 유통업에 종사한 초기 기업인들 중에는 지금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창업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례만 보더라도 싸게 물건을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노하우 내지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련 물건을 전달해 주는 역량만으로도 창업할 이유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창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단순 조합하거나 결합하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제품에 색깔이나 외관만 바꿔도 훨씬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미 존재하는 제품을 조금 더 빠르게 배송하거나 조금 더 저렴하게 판매할 수만 있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전자신문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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