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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건설 현장에 이식한 AI, 죽음을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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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AX 인사이트]
빅데이터·AI 활용해 건설현장 재해 예측·관리
시공뿐 아니라 설계·관리 등 전단계에 AI 도입
위험관리 '관리자→작업자'…"기술 내재화해야"


'486명'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다. 2022년(539명)과 비교하면 9.8% 줄었다. 하지만 건설산업은 여전히 산업재해 사망자 수 1위 업종이다.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2016명 가운데 약 4분의 1(24.1%)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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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산업재해 현황/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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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지난 8일 발생한 울릉공항 토사붕괴사고를 포함, 건설현장 사망사고 발생 건수가 올해에만 21건에 달했다.

손가락 골절, 넘어짐 사고 등 단순 재해 건을 포함하면 총 64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평균 4~5건의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이 무엇보다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건설사들은 안전관리 요원을 현장 곳곳에 배치하고 작업자의 안전 교육에 힘쓰는 등 사고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넓은 작업장을 제한된 인력으로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건설사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것이 '스마트 건설안전 시스템'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CCTV,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설계 △현장 △관리시스템에 접목해 건설 사업 전반의 안전을 관리하는 체계다.

과거에는 변수가 허다한 '공사현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데이터 수집,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빅데이터 AI 기술은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는 발판이 됐다. 특히 통제, 관리, 제재 관점에서 '관리자 중심'으로 이뤄졌던 안전관리가 AI 기술 접목을 통해 개별 '작업자 중심'으로 변화하며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는 긍정적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건설현장 위험 사각지대 'AI'로 찾아낸다

건설업계 '맏형' 격인 현대건설부터 바뀌고 있다. 현대건설은 2018년 빅데이터 AI 전담조직인 '디지털혁신연구팀'을 신설해 건설현장 위험분석 시스템을 개발에 나섰다.

2019년 '재해 예측 AI시스템'을 개발하고 2021년에는 'AI 장비협착 방지시스템'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했다. 2022년에는 'CC(폐쇄회로)TV 영상분석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안전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재해 예측 AI시스템은 현대건설이 그동안 수행해 온 각종 건설 프로젝트 현장에서 10년간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통상 영상분석 인공지능은 AI 전문기업 영상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건설현장 특성상 AI 전문기업이 실제 건설현장 영상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워 공정이나 작업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건설공사 현장 적용이 쉽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공사현장의 다양한 영상데이터를 집적했고, 건설업에 특화한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를 구축해 현장 CCTV 영상분석시스템을 개발했다. 활용한 빅데이터만 약 4000만건 이상이다.

재해 예측 AI시스템은 현장 담당자가 현장 관리 시스템에 공정률, 사용 장비 등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진행될 공사 내용을 예측해 재해 발생 확률을 분석한다.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형별 안전재해 발생 확률과 안전관리 지침을 만들어 위험요소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재해 예측 AI시스템은 2020년부터 대부분 현장에 적용하고 있으며, 현재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사고위험에 노출되는 현장 근로자 개개인들에게 재해 위험 알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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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CCTV영상분석 시스템, AI영상인식 장비협착방지시스템/자료=현대건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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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은 AI 영상인식 기술을 활용해 건설현장 사각지대를 사전에 찾고 위험을 예방하는 안전관리 기술도 적용 중이다.

'CCTV 영상분석시스템'은 현장 곳곳에 CCTV를 배치하고 영상을 연결해 AI가 실시간으로 건설장비 위험과 화재 위험 요소를 감지하는 기술이다. 안전모를 쓰지 않고 근무하는 작업자를 찾아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작업장비에서 불꽃이 튀거나 연기가 발생하는 것도 포착해 낼 수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3D 그래픽 등 가상 데이터를 활용해 건설장비, 작업자, 불꽃 등 200만개 이상의 작업객체를 포함하는 데이터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중장비 끼임사고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상인식 AI도 현장에 도입했다. 중장비 측면과 후방은 끼임, 눌림사고 등이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사각지대로 꼽힌다.

기존에는 초음파를 이용해 중장비 측·후방에 사람이 있을 경우 알림을 울리도록 했는데,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카메라를 통한 영상인식 AI를 도입하면서 사람이 접근했을 때만 알람을 보내도록 해 다른 사유로 작업이 멈추는 등의 문제점을 낮췄다.

현장뿐 아니라 설계 및 계획 단계에서부터 AI를 적용해 작업을 자동화하면서 오류 가능성을 낮추고 정확도와 완성도도 높이고 있다. 건설현장의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안전과 직결되는 데다 완공 후 유지보수 문제를 줄일 수 있어 다방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위험할 땐 일단 멈춤"…근로자 작업중지 요청 확산

현장 근로자가 주체가 된 안전관리 방식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은 전 직원에게 현장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 작업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사용을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업중지권은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 발생시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된 권리다. 삼성물산은 위험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사용한 근로자에게 포상과 비용 보상을 하는 등 제도 정착을 돕고, 협력업체 손실 보장 등 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이 결과 2021년 3월 작업중지권 전면 도입 후 국내외 113개 건설현장에서 30만건이 넘는 작업중지권이 행사됐다. 첫해에는 8224건으로 1만건 미만이었지만 2년째 4만4455건으로 증가했고, 3년째에는 24만 8676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하루 평균 270건, 5분마다 한번씩 작업중지를 행사한 셈이다.

작업중지는 삼성물산이 자체 개발한 현장위험 발굴 애플리케이션 'S-TBM'을 통해 누구든 현장에서 바로 접수할 수 있다. 삼성물산 현장 근로자인 강병욱 씨(63)는 "불이익이나 다른 근로자의 불만 등을 걱정했지만 (작업 중지) 한마디에 현장이 실제로 변화하는 것을 느끼면서 적극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근로자 스스로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안전문화로 자리잡았다고 자평했다. 실제 작업중지권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를 낮추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결과 근로자가 1일 이상 휴업하는 재해발생 비율인 '휴업재해율'이 도입 첫해인 2021년부터 매년 15% 가까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은 S-TBM을 전 현장에 확대 적용해 근로자가 쉽게 위험상황에 대한 작업중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앱을 통해 위험상황 개선 결과도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중지권 행사로 발생하는 공기 지연, 인력추가 투입 등 협력업체의 비용 증가에 따른 보상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재까지 13개 업체, 391건에 대한 작업중지권 관련 비용을 정산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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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위치한 한 건축현장에서 근로자가 양중 관련 작업중지를 신청후 개선사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삼성물산 건설부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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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관리자가 접근하기 힘든 사각지대에 드론이나 사족로봇 등을 활용해 위험 요소를 파악해 안전성을 높이는 현장도 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밀폐지역의 가스누출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지난해 상반기 국내 최초로 볼 형태의 감지시스템을 개발해 누출 여부와 위험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마쳤다. 작업 종료 후 현장에 누군가 무단으로 침입할 경우 지능형 감지 시스템으로 상황실에서 전 현장의 침입관리가 가능한 시스템도 도입했다.

미래 건설현장은? 무인굴착기부터 운반로봇까지

미래의 건설현장은 어떻게 변화할까? 설계안을 통해 현장을 스스로 파악하고 레이더 센서와 카메라로 주변 장애물을 인식해 원격으로 작업할 수 있는 AI 무인 굴착기. 먼 미래의 일 같지만 올해 초 개최된 CES 2024에 등장한 기술이다.

이를 활용하면 공사 작업 진행이 어려운 저녁 시간이나 인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위험 지역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공사기간 단축 등 건설현장의 생산성과 안전성을 모두 높이는 새로운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이동이 편하고 연비가 높은데다,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해 건설자재를 알아서 운반하는 건설자재 운반로봇도 개발됐다. 상용화 시 밤 시간대 건설자재 이동이 가능해 현장 안전과 공기 단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간공사에 따른 소음, 민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은 인력이 많고 안전 사고로 이어질 위험 등을 고려해야 해 상대적으로 기술 적용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에 AI 관련 기술 적용도 다른 업종에 비해 느린 편이지만 현장에 맞는 기술 개발을 지속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현장에 AI 기술이 일상화 되는 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보다 안전하고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인 건설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여전히 발생하는 재해사고…"업무방식 변화 필요"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여전히 문제이자 과제로 남아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 원인을 현장 내에서 기술의 활성화 정도가 낮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 안전관리 분야 한 관계자는 "AI 기술 접목 등 건설현장에서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 고도화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이 발전해 가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업무 방식에 이 같은 기술들이 아직까지 녹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개발될 빅데이터 AI 활용 안전 기술도 현장에 어떻게 잘 녹일 것인가 즉 기술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기술을 활성화하고 스며들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방식, 일하는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안전관리 관제시스템이 모두 통제와 관리 등 관리자 입장에서 접근해 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계단식 업무 흐름은 정보공유의 한계로 종합적인 안전문제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실무자와 현장 근로자들이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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