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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의료비 100만원 순삭 … 임신부 호갱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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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일주일 만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쓴 나는 임신부 호갱임을 인증한 꼴이 됐다.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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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27] 연말정산 기간이다. 홈텍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작년 한 해 동안 얼마나 썼는지 확인해봤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말할 것도 없고 작년엔 특히 의료비 지출이 컸다. 280만원 상당이다. 임신·출산으로 병원을 수시로 다녔다지만 같은 시기에 출산한 친구에 비해 2.5배나 많은 금액을 의료비로 썼다. 이런저런 검사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의사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지출은 1차 기형아 검사로 100만원이 '순삭(순간 삭제)'됐다. 임신 12주 무렵에 실시하는 태아 목덜미 투명대 검사가 발단이다. 이 검사는 태아 목덜미 부위에 투명하게 보이는 피하 두께를 측정하는 것으로 1차 기형아 검사라고도 부른다. 두께가 두꺼울수록 염색체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융모막 융모 검사 또는 양수 검사를 권유받는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2.5㎜ 이하를 정상으로 보는데 나는 2.82㎜로 다소 두꺼운 편이라고 했다. 의사는 양수 검사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융모막 융모 검사를 추천했다. 융모막 융모 검사 비용은 100만~120만원이다. 보험 적용이 안 될뿐더러 유산 확률이 0.1~0.3%라고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유산 확률 때문에 망설여졌다.

온라인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여러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대학병원은 3㎜를 기준으로 삼는 곳이 상당해 내가 다니던 병원이 보수적으로 기준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기준이 낮을수록 병원은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강남의 다른 병원을 찾았다. 2.4㎜가 나왔다. 이전 결과보다는 나은 수치였다.

이 병원 의사는 비침습 산전기형아 검사(NIPT)를 권유했다. 세계적으로 3㎜를 기준으로 삼는 추세이긴 하지만, 이전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2.82㎜)는 변함이 없는 데다 찝찝하니(?)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NIPT는 간단한 채혈을 통해 기형아·다운증후군 등의 유무를 검사할 수 있어 유산 위험도 없다고 했다. 검사 비용은 약 66만원이다.

융모막 융모 검사보다 안전하다는 설명에 곧장 NIPT를 했다. 기형아 발생 확률이 높은 염색체 몇 개를 선별해 검사하는 것으로 다운증후군 검출률이 98~99%에 달한다고 했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66만원의 기회비용을 치르고 불확실성을 제거한 셈이다. 의사에게 환자는 을이라지만 임신부는 갑을병정의 정쯤 될 것 같다. 태아의 건강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과 의사 권유로 약 30만원 상당의 검사를 추가로 더 했는데 역시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일주일 만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쓴 나는 임신부 호갱임을 인증한 꼴이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는 끊임없이 양수 검사를 권유받았다. NIPT는 100%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유산 위험을 감수하고 양수 검사를 받았을 때 달라지는 점이 무엇이냐고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태아라 치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염색체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나는 양수 검사를 하지 않았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흔히 임신부의 나이가 많거나 과거 염색체 이상이 있는 아기를 분만한 경험이 있는 경우, 기형아 검사 결과가 애매한 경우 등은 양수 검사를 권유받는다. 임신부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결정하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 또 고민한다. 밤낮으로 인터넷 카페를 뒤지고 출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본다. 양수 검사가 얼마나 아픈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주변에 유산한 사람을 본 적은 있는지, 만약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다. 배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양수를 뽑아내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검사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선택이 어렵다면 나와 같이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선택은 결국 본인의 몫이지만 결정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혹은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양수 검사가 아니더라도 초음파 검사나 각종 기형아 검사에 대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한지 회사 단체보험을 확인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대개 개인 실비보험은 임신·출산 관련 비용을 보상하지 않지만 단체보험은 임신·출산에 대해서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다만 외래·통원 치료에 대해서도 청구가 가능한지, 입원 치료에 대해서만 청구가 가능한지는 확인해봐야 한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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