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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혐오의 공생’에 갇힌 기자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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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에서



“대의를 위해 보도하지 말아달라. 한국 기자가 먼저 욕하고 멱살을 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전화를 걸어온 중국 기자는 “내가 대신 사과한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에서 발생한 중국 경비업체 경호인력의 한국 기자 폭행 사건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내가 사과받을 일이 아니라며, 이럴 시간에 사건 관련 취재나 하라며 전화를 끊는데 30분 넘게 걸렸다.

사건의 본질은, 사람이 맞았는데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문제다. 현장 사진과 동영상도 보도됐고, 중국의 촘촘한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인공지능(AI) 감시도 막강한 데 말이다. 중국 외교부가 “조사중”이라고 했으니 실체가 밝혀지고 적절한 조처가 취해지길 기대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중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큰 타격을 입은 점이 아쉽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를 들어 한-중의 공통점을 강조하고, 시진핑 주석이 사드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리커창 총리는 ‘봄날’을 언급하는 등 지도자들은 분명히 조심스레 관계 개선을 타진했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 한-중관계 회복을 가로막는 목소리가 ‘혐오의 공생’을 이루면서, 양국 관계는 조금만 흔들려도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듯한 취약한 상태가 됐다.

16일 중국 뉴스포털 ‘진르터우탸오’의 논객 ‘해외탐객’은 문 대통령의 방중에서 공동기자회견과 공동성명이 없다는 등 국내 일부 언론의 비판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자업자득’이라고 비난했다. 기자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중국 한 매체는 “한국 매체들이 일부 한국 정치인들과 연합해 중국을 모욕하려는 자작극”이라고 규정했다. 주된 근거는 한국 매체의 관련기사에 달린 “한국 기자들의 행위가 부끄럽다”는 등의 댓글이다.

한국 국내의 정부 비판은 중국 내 반한 여론의 먹잇감이 되고, 중국 언론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면 다시 한국의 반중 여론을 자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악화된 한-중 관계에서 득을 보는 이들이 지지하고 있을 ‘혐오의 적대적 공생’이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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