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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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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대만 무성했던 남북관계-원칙과 현실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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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우리민족 서로돕기 등 20여개 대북 민간단체들이 남북 산림협력을 체계적이고 본격화하기 위해 힘을 모아 <겨레의 숲> 창립 총회를 열었다. 출처: <겨레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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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좀처럼 변화의 조짐이 없다. 12월 중순 중국에서 남북이 함께 참가하는 국제 청소년 축구대회가 열리지만 평양을 피하고 중국 남쪽 쿤밍을 택했다. 숨통을 연 것이라기 보다는 꽉막힌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11월 23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한반도정책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뿐 아니라 안보와 외교의 통합된 접근을 추구한다"며 "그래서 정책 이름도 '한반도정책'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의 남북관계를 보면 너무나 괴리가 크다. 단절된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비웃듯이 남북관계는 기대만 무성하고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닫힌 문을 열고자 한 건 남쪽이었다. 문을 두드렸으나 북은 묵묵부답인채 미국을 향해 핵실험과 미사일로 대응했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정반대다. 2016년 북한은 5월20, 21일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했다. 북의 군사회담 제의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제7차 노동당 대회 기간(2016.5.6~9)에 제안한 것으로, 당 대회 뒤 북한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서한을 통해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언급하며 “일체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보장하기 위한 출로를 함께 열자는 우리 제안에 지체없이 화답하라”고 공개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 무응답으로 회담제의 무산시킨 북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6일 독일에서 베를린에서 '신 한반도 평화비전',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밝혔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7월17일 국방부가 제안한 것이 남북 군사회담이다.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군사당국 회담을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27일에 열자는 것이다. 또 적십자사는 나흘 뒤인 7월21일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등 인도적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은 무응답으로 이 회담제의를 무산시켰다. 그런 맥락에서만 본다면 북은 자신들의 제안을 1년 뒤 문재인 정부가 제안했음에도 거부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앞서 6월26일 "유진벨 재단이 신청한 19억 원어치의 의약품 및 병동 건축자재 등 대북물자 반출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당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민간 교류는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고 이에 따라 승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진벨 재단의 대북 지원물자 반출은 2016년 3월과 9월 지난 1월에도 계속됐고 당시가 4번째로 새로운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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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평양 중화군 12헥타아르 부지에 준공한 양묘장 시설 준공식에 참가한 남쪽 인사들이 공동식수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출처:<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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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열쇠이자 핵심적인 인도적 문제로 보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은 남쪽의 일방적 요구라는 측면이 크다. 그동안 북쪽은 마지못해 응해 왔기에 받아들일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에 비하면 북쪽의 영유아 지원사업은 가장 비정치적인 분야이고 북도 절실히 필요한 사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선 순위가 가장 높은 대북 협력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9월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이런 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을 영유아 지원이었음에도 중단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내세운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원칙을 관철시킨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부는 남쪽 단체를 통한 지원 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적인 지원 방식을 택했다. 북이 남과의 대화와 접촉에 응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한 것이지만, 남쪽 보수층의 반발, 남북대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구심 등 국내외 여론을 의식한 것이었다.

■ 대북 영유아 지원 사업 감감 무소식

그러나 이 또한 3개월여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 무소식이다. 유엔의 대북 영유아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했지만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하겠다”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한 결정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미국을 의식해 막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명균 장관은 12월4일 통일연구원의 국제 학술회의 축사(서면)에서 “남북관계의 개선과 북핵문제의 해결을 선후관계에 놓거나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선순환 구도 속에서 함께 진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우리의 구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분리 원칙을 견지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구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더 크다. 북한이 11월 29일 새로 개발했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를 감행하고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그에 맞서 대북 제재가 다시 추진되고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벽에 부닥친채 국내외 여론에 발목이 잡혀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문을 두드리고, 회담을 제안하지만 머뭇머뭇하며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당사자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남북관계는 다르다. 북의 자세가 어떠하건 우리가 주도해 변화시켜 나갈 여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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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중심이 돼 평양 중화군 12헥타아르 부지에 준공한 양묘장 시설을 남쪽 참가들이 둘러보고 있다. 출처:<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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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논리 구애받지 않는 사업 우선 추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예컨대 북한의 산림녹화를 위한 협력 사업도 영유아 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북핵이든 남북관계든 상황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추진해야 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다. 산림녹화는 지금 북이 직면하고 있는 재난과 식량난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생태계 복원이라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이상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지원 단체인 머시코(Mercy Corps)는 일찍이 사과나무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그건 사과나무 지원 사업의 성공과 여기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북한 농부들이 다른 농작물도 효과적으로 다량 생산해 낼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사과나무 심기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농업 생산능력을 향상시키는 계획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머시코의 데이비드 오스틴 북한 담당관은 지난 2011년 국내의 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식량 지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정부는 역사적으로 스탈린과 히틀러, 짐바브웨 정부 밖에 없었다. 어린이와 고령자, 임산부는 어느 사회에서나 취약층이고 우리는 (그들에 대한) 인도주의의 중요성을 생각해봐야 한다".

토마스 피슬러 스위스 협력 개발청 평양 사무소장은 북한이 여섯 번째 핵실험을 감행한 뒤에도 대북 지원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논란에 대해 지난 9월4일 <스위스 공영방송(SRF)>과의 인터뷰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있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 산림 협력은 남북협력 가늠할 척도

영유아 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북녘의 ‘나무 심기’, 보다 큰 틀에서 산림협력은 전반적인 남북 협력을 가늠할 바로미터다. 북이 이마저 거부한다면 다른 어떤 사업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림 녹화는 하루 이틀에 이뤄질 수 없기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다.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우리민족서로돕기 등 주요 대북NGO들의 연합조직 <겨레의 숲>이 출범한 지 올해로 10년이다. 당시 겨레의 숲을 창립하게 된 계기는 북이 2006년에 우리 민간단체에 산림복구에 대한 규모 있는 지원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10년전인 2007년 4월<겨레의 숲>은 출범선언에서 ‘참여와 나눔으로 남북 강산을 푸르게 물들일 통일의 숲’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산림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산림녹화사업 10개년 종합계획안 (2007년~2016년)’을 세우고 양묘, 조림, 산림 병해충 방제, 국민참여 확대의 네 분야에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양묘 분야의 경우 북쪽에 양묘장 10개소를 조성하고 현대화 시켜 매년 1천만 그루 묘목을 생산해 10년간 1억 그루, 3만 ha(1억평)의 조림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겨레의 숲이 내건 구호는 북녘을 푸르게 겨레를 푸르게’였다. 그러나 2010년 이명박 정부는 5.24조처로 남북 교류협력을 중단시키면서 이마저도 막았다. 이제 겨레의 숲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강태호 평화연구소장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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