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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신약개발 발목 잡는 `거북이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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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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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행정이 신약 개발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앞다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인력 부족 등으로 임상 승인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신약 후보물질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증명하는 임상시험이다. 임상시험을 하려면 식약처의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제약업계에 따르면 식약처가 임상시험 계획 승인 여부를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면서 신약 개발이 지연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원래 식약처에서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받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규정상 30일이다. 그러나 30일 내에 임상시험 승인이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이나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임상시험 승인이 이뤄지지만 속도감 있는 신약 개발을 위해 임상시험 계획을 제출받은 뒤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규정 기간 이후 승인된 것으로 보는 통지 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통지 대신 허가의 성격을 띠다 보니 승인을 기다리는 업체로서는 식약처 결정을 하세월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만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한 만료에 임박해 제약업체에 자료 보완을 요청하거나, 자진 철회를 권유하는 사례도 잦아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면 중국은 규제를 대폭 풀고 있다. 신약 개발을 마무리하고 판매 허가를 받기까지 임상시험 승인 신청(IND), 임상시험(CT), 신약 허가 신청(NDA) 등 3단계를 거치는데 중국은 2015년부터 임상시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임상시험 승인 신청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기존에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리던 임상시험 승인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신청 후 60일 이내에 무조건 임상시험 허용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또 임상시험 계획 승인과 신약 승인 신청을 담당하는 약품심사평가센터(CDE)의 심사관 수도 크게 늘렸다. 2016년 150여 명 수준이었지만 2017년 700명가량으로 증원했고, 내년에는 1000여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5월 임상시험 실시 기관도 확대했는데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822개 기관에서만 임상시험을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격을 갖춘 민간 회사도 임상시험 사이트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지난 6일 열린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제약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류 처장에게 여러 건의사항이 제시됐다. 가장 먼저 건의된 사항이 "신약이나 개량 신약의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신속히 처리해달라"는 요구였다.

임상시험 승인 신청이 제때 나지 않으면 신약 개발 속도는 예상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식약처의 심사관 수 부족과 승인에 규정보다 긴 시일이 소요되는 행태가 신약 개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식약처의 늦은 대응으로 임상시험 분야에서 우리나라 경쟁력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 역시 제자리걸음이다.

13일 온라인의약도서관에 따르면 2013년 603건이었던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지난해 628건에 그쳤고, 올해도 이날 기준 626건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매년 임상시험 승인이 600~700건에서 변동이 없는 것이다. 임상시험 승인 현황을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임상시험 수행 규모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반면 규제를 대폭 푼 중국은 약진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이 운영하는 임상시험 정보 등록 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Clinicaltrials)'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가별 제약사 임상시험 동향'에서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7위를 달렸다. 하지만 지난해 8위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9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2013년 13위에 머물렀던 중국은 지난해에 6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올해 상반기에 미국과 독일에 이어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최근 2년간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9위에 머물렀던 일본도 올해 상반기에 우리나라를 추월했다.

지동현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이사장은 "서너 발 앞서나가는 일본과 최근 들어 임상 승인 환경을 대폭 개선한 중국 사이에서 넛크래커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임상 승인 인프라스트럭처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약업계에서는 고강도 규제 해소가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당국도 지난달 '제2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내놨다. 종합계획은 △임상시험 승인 신청 기간 단축 △임상시험 관련 서식 표준화 및 일반 의료기관에서 임상 수행 허용 범위 검토 △신속한 피험자 모집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중국의 규제 개혁과 유사한 방식이다. 문제는 '정책이 언제 현실에 반영되느냐'다. 특히 신속한 임상시험 수행을 위해선 심사관 확충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재 전체 의약품 허가 관련 정규직 심사관은 132명이다. 심사 관련 부서의 관리직까지 포함한 수치라 실제 심사관은 이보다 적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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