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지금! 괜찮으십니까](21)병보다 더 아픈 건 가족에 대한 서운함…따뜻한 말과 눈빛이 ‘희망의 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방암 여성과 가족의 지지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진료실에서 겪은 일이다. 항암치료에 막 들어선 유방암 환자가 너무 힘들다며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드문 일이 아니어서 환자를 진정시키고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항암치료의 고통스러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가족에 대한 서운함, 특히 배우자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가족에 대한 내용이라 이렇다 저렇다 맞장구는 칠 수 없지만 유방암 수술을 하고 지칠 대로 지친 환자를 더 배려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향신문

유방암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이와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는 배우자와 가족의 정서적·물리적 지원 부족에 서운함을 토로하고, 실제로 가족과 멀어진 사례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유방암으로 인해 별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림성모병원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그리고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가 함께 ‘유방암 환자와 가족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총 358명의 유방암 환자가 참여했고, 결과는 필자의 생각 그 이상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유방암 환자 10명 중 1.5명(15.3%)이 유방암 진단 이후 이혼, 별거 등을 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서 밝힌 국내 일반 여성의 평균 이혼율은 4.8%이다. 10명 중 0.5명꼴로 이혼한다는 것인데, 유방암 환자의 이혼율은 일반 여성에 비해 3배나 높은 15.3%라니, 너무 높은 수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년 가까이 유방암 전문의로 지내면서 필자에게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후 이혼한 환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환자가 유방암 진단 이후 가정과 멀어지고, 홀로 수술과 힘든 치료를 견뎠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먹먹했다.

흔히 유방암을 착한 암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방암은 치료기간이 긴 암이다. 수술 이후 짧게는 7~8개월, 길게는 5년 이상 항암·호르몬·방사선 치료가 이어진다.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는 이 기간을 가장 힘들어 한다. 더구나 배우자와 가족은 가정으로 돌아온 유방암 환자에게 수술 직전과 같이 관심을 쏟지 않고 물리적·정서적 지지 역시 부족해진다.

유방암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암이다. 하지만 반드시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의 세심한 보살핌이 동반되어야 한다. 따뜻한 말투와 경청, 다정한 눈빛만으로도 유방암 환자는 감동을 받고 치료를 이어갈 힘을 얻는다. 배우자와 가족에게 충분한 격려를 받는 환자는 유방암을 이겨내겠다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유방암학회에서도 유방암 극복을 위해 가족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발표하고 있다.

그중에서 필자가 유방암 환자와 가족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지침은 ‘유방암 극복을 위한 남편의 7가지 계명’(별표)이다.

유방암은 아내와 엄마가 걸리는 암이다. 가정의 가장 큰 축인 여성이 쓰러진다면 그 가정 역시 와해되기 쉽다. 이번 조사 결과 유방암 환자의 이혼율이 일반 여성에 비해 높다는 점은 유방암이 단지 건강 문제만이 아니란 점을 시사한다. 유방암은 한 가정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

가족·의료계·정부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책 동반으로 우리나라 여성 모두가 유방암의 위험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힘들 때 누르세요

보건복지콜센터 희망의 전화(129)

정신건강 위기 상담전화(1577-0199)

생명의 전화(1588-9191)

중앙자살예방센터 전국시설 검색 (http://www.spckorea.or.kr)


<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자살예방협회 공동기획>

<김성원 | 대림성모병원장(유방외과 전문의)>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