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 차림의 모녀가 놀란 듯 기자를 맞았다. 어머니 김미숙(46ㆍ가명)씨는 사흘째 계속되는 여진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면서도 낯선 손님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줬다. 거실 바닥의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휴지와 약봉지, 속옷 등이 담긴 종이봉투였다.
지진 발생 사흘째인 17일 이웃들은 모두 대피한 아파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김미숙(가명)씨가 딸과 이야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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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건물 안에서 지진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용도실에는 비상용 컵라면이 쌓여 있었다. 창밖으로 당장 쓰러질 것 같이 금이 간 바로 옆 F동이 보였다.
포항시 대성아파트 E동이 기울어져 있는 모습.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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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아파트에서 집을 빼내 트럭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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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휴교령 이후 엄마와 쭉 함께 있었다. 통증 때문에 걷다가 주저앉아 버리는 엄마를 혹시 모를 탈출상황에서 부축하기 위해서다. 여진의 공포를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티고 있었다. 송양은 “집이 흔들리면 집 밖으로 최대한 빨리 나가는 방법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방한복을 입고 잠을 청하는 이유다.
집 곳곳에는 지진이 할퀸 상처가 남았다. 현관 옆 송양의 방엔 책장과 책상이 부서져 있었다. 현관 밖 벽은 1m 길이의 금이 생겼다. 대피소가 아닌 숙소로 옮길 생각도 해 봤지만 장애인 수급비를 받는 처지여서 딱히 해법이 없었다.
김씨 딸의 방에 있는 책장과 책상은 지진에 뒤틀리며 부서졌다. 최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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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이재민은 더 큰 피해를 본 이웃을 걱정하고 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윤문희(32)씨는 “일부 주민들은 집이 무너졌다. 전기와 가스가 끊겨 집 안이 추워도 그나마 피해가 덜한 우리까지 대피소로 가면 민폐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위험 속에서 생계를 꾸리는 주민들도 있다. 17일 오전 1시 북구 양덕동 삼구트리니엔 2차 아파트 앞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유경희(54)씨는 남편과 식당을 청소했다.
지난해에 개업한 이 가게는 2층의 화분과 액자가 깨지는 피해가 있었다. 이웃 상인들과 일부 종업원은 전날 대피소로 떠났다. 유씨는 “가게 문을 닫을 형편도 아니고 지진 때문에 식사를 못한 손님들을 외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규진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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