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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인왕산 자락 순성놀이, 장원급제와 시국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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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 서울시청 한양도성 사이트 (http://seoulcitywall.seoul.go.kr) /백악구간 창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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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기록한 [한경지략]에는 <봄과 여름이 되면 한양 사람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고 적혀 있다는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는 순성놀이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그들의 도읍지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마음만은 평안했을까? 부신 햇살의 손을 잡고 뛰어오른 산 정상에 서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내려다보는 서울은 따사로움을 놓친 저녁 햇살 아래 제 속살을 숨긴 채 평온하고 고요하다.’

위 글은 얼마 전 필자가 펴낸 책(‘내 안에 꿈 있지' p276)에서 인용한 글이다. 모 대학의 여행작가과정 수료 과제물로 써낸 글이었는데 책에 실리게 됐다. 제목은 '인왕산 자락 순성놀이'이다.

‘한양도성길 4개 코스 중 가장 긴 코스인 인왕산 구간은 숭례문 (남대문)에서 돈의문(서대문)터를 지나 인왕산으로 오른 후 창의문까지 이어지는 5.3km구간이다.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 때에 외침으로부터 한양을 지키기 위해 도읍지였던 한양을 에워싸고 축조된 성곽으로 인왕산, 백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능선을 따라 세워졌다. 성이 완공된 후 백성들 사이에서 성곽을 따라 하루 종일 걷는 순성놀이가 유행했다고 한다.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한 선비들이 도성을 따라 돌며 급제를 빌었는데, 이것이 도성민들에게 전해져 해마다 봄과 여름이면 성곽을 돌며 경치를 즐기는 풍습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출처:세계유산총회 홍보물, 서울시 제작).’

작년 가을 이맘 때쯤 인왕산구간 성곽길을 남편과 함께 걷게 되었다. 서울 성곽길뿐 아니라 서울 둘레길들도 맘으로야 빠짐없이 다 걸어보고 싶어서 형편되는 대로 걷고 있던 중이었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자하문 고개에서 내리면 윤동주문학관이 그 고개의 짝꿍인 듯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다. 그 건물 뒤편으로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지고, 언덕에 올라 여러 나무와 들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올라가면 언덕 한쪽에 서 있는 ‘서시’ 시비를 만날 수 있다. 언덕 뒤편으로 줄지어 선 단풍나무들의 홍조를 즐길 새도 없이 건너편 산길을 계단이 이끄는 대로 잠시 오르면 곧바로 산성길이 시작된다.

그 산성길을 오르다 휘릭 뒤돌아서면 멀리 서울 장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었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손에 잡힐 듯이 서울의 골목길들까지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에 붙잡혀 속절없이 당겨왔다 도망가곤 했다. 그때 당시, 시국이 유난히 뒤숭숭하던 때였다. 속속들이 제 속살을 내보이던 수도 서울은 식어가는 저녁 햇살 아래 평온하고 고요해 보였다.

외침으로부터 한양을 지키고자 축조된 성곽을 돌며 그 옛날 선비들은 장원급제를 빌었다는데, 뒤엉킨 속사정은 숨긴 채 고요함 속에 잠겨있는 수도 서울을 내려다보며 시국의 안녕을 빈 사람들은 몇이나 됐을까? 나 또한 이런저런 상념에 잠시만 젖었을 뿐,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람과 성곽들을 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무수한 백성들의 눈물과 한이 서려있을 성곽 축조의 역사도 마음 기울여 들여다 보지 못했다. 어디에나 역사는 잊히고 온갖 놀이만 무성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는 못 살더라도 온갖 놀이에만 정신을 탕진하고 사느라 역사라는 두 글자가 아예 없던 것이 되게 할까 우려된다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경연 꿈길독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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