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4 (화)

[기고]버려진 거리가 괴물을 만든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김기남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


연일 무서운 청소년들이 나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모니터화면에서 앳돼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흉포한 기사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매년마다, 매사건마다 더욱 끔찍하게 진행되어져 가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청소년을 검색하면 가출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위기 청소년, 문제 청소년 등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어서 검색된다. 이런 현상들은 청소년이 있는 현장, 전쟁으로 치면 최전방인 가출분야에 몸담은 지 20년이 된 현장 활동가로서도 견디기 힘들다. 내가 함께하고 만나왔던, 앞으로도 함께해야 할 청소년들이 과연 그렇게 무서운 아이들이었나?

이럴 때면 오래 전 나에게 처음 '가출'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던 남수(가명)가 생각난다. 어느 무더운 여름 밤, 신림역 순대촌의 뒷골목에서 처음 만났던 그 아이는 이미 거리생활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가출청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아다닌 지 수년째인 남수는 범죄에 가까운 비행을 통해 생활비를 마련하거나, 거리의 노숙생활을 되풀이하는 비행청소년, 즉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흔히 문제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그런 아이였다. 며칠째 씻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해 외부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했던 그 눈빛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 남수를 만났을 때의 두려움과 거부감은 말로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작은 컵라면을 들고 다가가서 나눠먹자며 말을 걸었을 때 잔뜩 배를 곯은 아이가 조심스럽게 나를 응시하며 다가왔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었다. 그 조심스런 만남이 몇 차례씩 되풀이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신뢰를 쌓아갔고, 그제야 아이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빠가 망치로 때리더라구요….' 농담하듯 풀어놓던 아이의 과거 이야기에 남수의 가출은 '가출'이 아닌 '탈출'이였던걸 이해할 수 있었고, 무서운 세상을 혹독하게 견뎌 온 어린 삶의 일부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어렵게 입소했던 청소년쉼터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 때문에 최소한의 지원마저 받기 힘들었던 남수의 삶은, 같은 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너무나 미안했다. 3년을 넘게 실낱같은 연을 이어오던 남수와의 인연은 불행히도 범죄처벌로 인해 경찰서로 잡혀간 이후 완전히 끊어졌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남수를 만나고 있다. 세간에 떠들썩한 사건기사 속에서, 아니면 신림동 뒷골목을 거니는 청소년들의 힘 빠진 뒷모습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한 무리의 아이들 속에서 남수를 발견한다. 시작은 평범했던 우리 곁의 아이였는데, 자기 나름대로 그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들이 문제아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혀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소년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그들의 끔찍하고 흉포한 행태를 보면 인지상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되면서도 아이들이 괴물로 변해버리기 전,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과연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거리의 청소년들에게 찾아가는 '스트리트워커스(street workers)' 사업을 시작했다. 정말 기쁜 소식이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먼저 대응해서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몇 십명의 스트리트워커스 시범운영을 통한 변화의 기대는 턱없이 작을 것이다. 전국의 위기 청소년들(지난해 기준 가출 신고 2만1852명)의 숫자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스트리트워커스와 같은 현장 중심형 접근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지닌 사회적 낙인감 극복을 위한 대책도 준비되어져야 한다. 가출, 학교 밖 등 청소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문제의 접근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는 심각한 저출산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히 출산 장려를 위한 제반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청소년을 제대로 키우는 것이 먼저 우선되어져야 한다.

김기남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