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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초동시각]美·中 전기차 갈등, 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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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갖춘 中공세에 美 방어

韓, 대미 자동차 수출 먹구름

아시아경제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관세를 대폭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기차를 앞세워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떠오른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시장 주도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게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나라별 정치 상황, 빨라진 산업 전환 등이 맞물려 심상치 않은 모양새를 낸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며 꺼내든 무역법 301조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1990년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협상이 지난하게 흐르자 미국은 1997년 10월 슈퍼 301조를 발동했다. 1970년대 제정된 통상법 301조는 미국과 교역하는 상대 나라의 불공정 행위로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보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때 종종 내린 적이 있다. 이를 토대로 1988년 한층 강화된 게 슈퍼 301조였는데, 당시 미국으로서도 첫 발동 사례였다. 국내에선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판했고 민간 영역에선 미국산 불매운동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번 타깃은 중국산 전기차다. 값싼 전기차가 자국 시장에 아무런 허들 없이 들이닥칠 경우 가뜩이나 뒤처진 전동화 전환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 공급망을 일찌감치 구축한 데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보조금을 뿌려가며 자국 전기차 생태계를 빠르게 키웠다. 미국은 배터리·태양광 설비 등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도 포함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머지않은 미래에 공동체의 안녕과 직결될 걸로 예상하는 분야다. 앞으로 나올 조치가 단순히 교역에서 우위를 지키는 게 아닌 안보 차원의 접근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다.

미국이 같은 ‘무기’를 꺼내 들었으나 과거와 지금 처지는 사뭇 다르다. 과거 우리나라를 상대할 때 공세적 태도를 지녔다면 이번에는 수비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어서다.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면서 발동한 지 1년이 1998년 10월 한미 자동차 협상이 타결됐다. 당시는 제너럴모터스(GM)가 20세기 중반부터 이미 수십 년째 세계 최대 완성차 메이커 자리를 지키던 때다. GM과 미국을 상징하는 포드가 미국 내 전체 기업 가운데 규모가 1, 2위에 달할 정도로 자동차 산업이 한창 위세를 떨친 시기이기도 하다.

반면 지금은 중국이 전기차 생태계를 확실히 틀어쥔 터라 미국으로서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경험치가 쌓인 공학기술보단 배터리 같은 핵심 공급망을 어떻게 갖췄는지가 경쟁력 가늠자로 꼽힌다. 중국은 큰 시장과 꾸준한 수요로 자생력도 갖췄다. 최근 중국에서 한 달간 팔리는 전기차는 70만~80만대에 달한다. 전기차나 배터리 세계 1위 기업 역시 자국 수요를 바탕으로 큰 중국 회사(BYD·CATL)다. 20세기까지 유효했던 글로벌 완성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불과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미국이 중국산을 배격하면 통상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전기차는 사정이 간단치 않다. 배터리를 포함해 다양한 완성차 부품을 중국에서 가져와 미국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가능성을 거론한다. 특히 다른 나라에 견줘 유독 낮은 수준의 원산지 규정(35%)을 미국이 트집 잡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미·중 갈등에서 한쪽 편에 서라는 압박을 여러 번 받아왔다.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한 대미 자동차 수출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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