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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윤제림의 행인일기 63]대학입시 고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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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제림 시인


세상에서 가장 빨리 가는 시계는 대학의 시계입니다. 캠퍼스의 분침과 초침은 강의시간에 쫓기는 학생처럼 언제나 분주하게 달려가지요. 새 학기가 시작됐나 싶으면, 중간고사가 다가옵니다. 신입생의 계절인가 하면, 졸업사진들을 찍고 있습니다. 어느새, 부쩍 자란 일학년들이 의젓한 걸음걸이로 수험생들을 안내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지금 '입학시험'으로 부산합니다. 저 역시 여러 날 째 학교를 떠나지 못합니다. 물론, 즐거운 구속입니다. 새로운 벗들을 기다리는 시간이니까요. 생각건대, 스승과 제자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학우들입니다. 같은 뜻으로, 같은 문제를 함께 풀어갈 친구들. 노소(老少)를 가릴 필요 없는 길동무입니다.

그렇다면, 면접시험장은 최상의 동지(同志)를 고르는 자리지요. 서로의 뜻이 통하고, 호감의 눈빛이 오갈 때 교수와 수험생은 쉽게 동지가 됩니다. 그러려고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묻고, 누구를 본받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합니다. 그런 의도로 이렇게 묻습니다. "롤 모델이 있습니까?"

대개 전공분야와 관련된 전문가나 위인들의 이름을 댑니다. 드물게 연예인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올해는 좀 별나다 싶습니다. 이런 답이 많이 늘어난 까닭입니다. "제 롤 모델은 아버지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열에 대여섯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놀랍다고 할 것까지야 없지만, 의외의 대답입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캐물었지요. 부모가 하는 일이 좀 특별하거나, 인생역정이 드라마틱할 것이라 기대하며 물었습니다. "아버지(혹은 어머니)께선 어떤 분이시지요?"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싱거웠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신다거나,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 분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름의 소유자가 지닌 보편적 특질입니다. 아니,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기본 성분입니다. '착시(錯視)'는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 때에만 생기는 현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식들 눈에도 제 부모의 책임정신과 희생적 태도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으로 보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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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눈을 흘기며 저를 꾸짖을지도 모릅니다. "젊은 애들이 부모의 삶을 본보기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그런 청년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거기까지는 저도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 문답이 예절학교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아무런 토를 달 이유가 없지요.

보이스카우트나 논산훈련소 설문 결과라면 오히려 박수를 칠 일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반을 좌우할 전공 선택의 자리에서 할 소리는 아닙니다. 공부하는 스님들의 '살불살조(殺佛殺祖;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죽임)'까지는 아니어도, 제 부모보다 나은 길을 걷겠다고 선언하는 게 옳지요.

제 바람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아버지가 '롤 모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아버지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따스하게 떠올리는 자식을 누가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서 본뜨고 따라나설 대상이 아버지밖에 없어서야!

그러나, 제 생각은 짧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고사장 밖으로 나와 보곤 세상 모든 학부모님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차가운 돌계단에 앉아 시험장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버지들. 자식의 학교가 될지도 모르는 건물들을 사진에 담으며, 시험 결과가 자식의 희망 같기를 기도하는 어머니들.

임시주차장으로 쓰이는 운동장엔 더 많은 아버지들이 보입니다. 상점 이름이 쓰인 승합차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눈만 감고 있는 아버지. 택배회사 트럭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학생의 아버지들입니다. 정말 치열하게 살고, 절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아버지들입니다.

반성합니다. 수험생들이 보고 듣고 읽은 게 없어서, 고작 아버지 어머니나 떠올렸을 것이란 제 생각은 틀렸습니다. 시험장 밖에 분명한 증거가 있었습니다. 세상 어떤 공부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마음보다 윗길에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어린 것들을 위하여/난로에 불을 피우고/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중략) 바깥은 요란해도/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후략).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 모든 아들딸들의 '롤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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