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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고장 난 대책…버스는 오늘도 '죽음의 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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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道 사고 후 내놓은 대책에도 주말 잇단 졸음운전 사고
대형버스 '디지털운행기록계' 기록 제출 의무화 등 급선무
1차선에 있는 버스 전용차선도 화 키워…고속도로 구조 개선을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2일 오후 3시 55분께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천안-논산고속도로 265.6㎞ 지점(순천 기점)에서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들이받으면서 차량 총 8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은 사고로 부서진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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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정준영 기자]"버스나 트럭이 뒤쪽에서 다가오면 아예 비켜주기 위해 차선을 바꿔요. 혹시 운전자가 졸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요."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 자가용을 이용해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김현수(38ㆍ가명)씨의 말이다. 빠른 속도로 전용차로 주행하는 버스가 겁이나 김씨는 되도록이면 2차선을 피한다. 지난 7월 50대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경부고속도로 사고 이후 정부는 고속ㆍ시외버스 첨단 안전장치 장착, 운수종사자 휴식시간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지난 주말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책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는 게 업계 종사자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대형버스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디지털운행기록계(DTG)'의 기록 제출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 지적된다. DTG는 운전자의 운전 시간, 운행 거리, 속도 등을 모두 기록하는 차량 내 '블랙박스'다. DTG를 이용하면 운전기사가 한 달에 며칠을 운전했는지, 실질적으로 얼마나 운행했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DTG 기록을 운수업체가 자발적으로 관리 당국에 제출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이로 인해 지난 7월 발표된 대책의 핵심인 '운전자 근로여건 개선'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DTG 기록만 있다면 실제 운전기사들이 어떻게 근무를 하고 있는지 한눈에 살펴 관리하면 되지만, 현재로선 일일이 업체를 살펴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내년 상반기 중 노선버스 DTG의 주기적 제출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운수업을 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이란 주 52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가 가능한 업종을 말한다. 운수업도 현재 특례업종에 포함돼 있다. 국토부는 이를 운전기사 졸음운전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특례업종 제외 및 근로시간 상한설정 등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회사 고용 근로자에게만 적용될 뿐 개인사업자인 전세버스, 개인택시 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개정 이후 계도기간을 두고서도 버스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실제 시행까지도 상당시간 소요된다는 것도 문제다.

버스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데에는 현재의 고속도로 구조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버스 전용차선이 1차선에 위치한 까닭에 속도를 내던 버스가 졸음운전 등으로 작은 승용차를 덮치며 사고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운전기사들의 과로를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번 사고가 나면 어김없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항공의 경우 파일럿이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비행 자체를 하지 않도록 제도화돼 있다. 버스 등 도로교통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과로 상태의 운전 자체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이준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장은 "버스기사들에게 똑같이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근로기준이나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운행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면서 "졸음운전 사고는 인식, 제도,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만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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