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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조각거장 권진규 유명미술관 소장품 상당수 원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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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진규기념사업회와 미술사가 박형국 교수 회견서 주장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등에서 원작 아닌 사후제작품 소장 확인

사후 복제품, 위작 등 뒤섞여 진작처럼 소장·전시돼 대책 필요

고인의 작품자료집 발간, 최종감정서 발급 등 추진

기존 화랑 중심 감정평가원의 감정서 유통 “인정않는다”



한겨레

조각가 권진규. 작업실에서 찍은 생전의 모습이다.


한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거장인 고 권진규(1922~1973)의 국내 주요 미술기관 소장품 중 상당수가 고인의 생전 원작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경기도미술관 등 유명미술관이 고인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제작한 사후 제작품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들을 적잖이 갖고있다는 내용이다.

증언을 내놓은 이들은 고인이 1940~50년대 유학했던 일본 도쿄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재직중인 미술사가 박형국 교수와, 고인의 외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이사다. 두 사람은 23일 서울 삼청동 피케이엠 갤러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고인의 사후 다시 제작된 복제 청동상과 테라코타상이 여전히 생전 원작인 것처럼 유통, 전시되고 있다”면서 2022년까지 진위작 논의를 판가름할 작가 종합자료집(카탈로그레조네) 발간 등 사업회 차원에서 대책들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형국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등 여러 주요 미술기관이 고인의 동의 없이 사후 만든 복제작품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으며 별도의 세부 설명 없이 원작과 함께 고인의 작품처럼 전시도 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9년 무사시노대학의 창립 80주년 기념전시로 이 학교 동문작가인 권진규의 전시를 추진하기로 하고 앞서 그의 작품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관들과 접촉해 소장품 조사를 하면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권진규 작품 27점을 소장중인데, 박 교수 조사 당시 유족 등으로부터 기증품을 받아들이면서 복수의 사후 복제품(청동캐스팅)들을 고인의 작품으로 소장, 전시한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배순훈 관장아래서 일하는 미술관 관계자들한테 ‘권진규가 만든 게 아니니까, 우리들도 안 빌려갈 것’이라며 문제가 되는 작품 목록들을 알려줬다”며 “문제가 되는 작품들은 전시에 반출하지 않고 수장고에만 보관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술관 쪽은 “권진규 소장품 27점 가운데 3점이 사후제작품이라는 사실을 기증 당시 유족한테서 들어 파악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진품임을 박 교수가 확인해준 바 있다”고 해명했다.

삼성미술관 리움도 생전 원작이 아닌 다수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박 교수는 단언했다. 그는 “2009년 무사시노대학의 권진규 회고전 당시 리움 쪽은 브론즈와 테라코타상 등 소장품 46점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직접 미술관 컬렉션을 조사한 결과 많은 작품이 사후 복제품 성격이고, 건칠상은 부러지고 곰팡이도 끼는 등 문제가 있어 하자가 없는 12점만을 빌렸다”고 말했다.

허경회 이사는 또다른 증언을 했다. 지난해 경기도미술관 쪽이 기념사업회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채, 고인의 명작 조각상인 ‘지원의 얼굴’을 본떠 그린 다른 작가의 그림을 고인이 그린 것처럼 표기하고 전시했다가 자신의 항의로 내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솔미술관(뮤지엄 산)도 전시에 사후 복제품 조각상을 고인의 원작으로 표기해 내놓았다가 사업회 쪽 지적을 받고 작품을 내린 바 있다고 그는 털어놨다.

두 사람은 국내 화랑들이 출자해 시장 유통 작품들의 감정을 사실상 도맡아하고 있는 한국감정평가원이 권진규 작품의 감정서를 발급하며 작품을 유통시켜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교수 연구팀과 기념사업회가 평가원, 개인연구자 등이 내놓은 권진규 진품 감정서 40건을 최근 분석한 결과 8건은 생전 진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하나의 감정기관만이 존재하는 감정 제도 자체가 전근대적이며 윤리성, 신뢰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작품 진위는 저작권자인 작가와 유족, 전문연구자들이 평가하는 게 맞다. 권진규 작품의 진위 여부는 사단법인 권진규기념사업회가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감정권을 지니며 소장자의 요청에 따라 작품 인증서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잘라말했다.

한겨레

권진규의 1960년대작 <스카프를 맨 여인>,


권진규 작품의 유통, 소장, 전시를 둘러싼 난맥상이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업회가 밝힌 권진규 관련 작품 종류는 크게 3종. 첫째가 진작이고, 둘째가 유족이나 지인의 의향에 따라 고인의 청동상이나 테라코타상 원본을 본떠 제작된 사후 복제작, 마지막으로 금전적 이득을 위해 고의적으로 눈을 속이려한 모작(위작)이다. 현재 사업회가 파악한 권진규의 조각품 총량은 사후 합법적으로 복제된 작품 100여점을 포함해 430점 정도고, 유화 및 데생 작품이 550여점이다. 실제로는 위작과 무단 재제작한 사후 복제품 등이 다량 끼어들어 함께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진위작을 가릴 기본 근거로 2022년까지 조각, 회화, 드로잉, 각종 자료, 연구사까지 망라한 5권의 작가 종합도록을 학계와 협력해 출간하고, 작품인증서도 적극적으로 발행하겠다는 게 기념사업회의 방침이다. 불편한 반응을 보일 것이 뻔한 화랑업계의 감정평가원, 주요 미술관들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나갈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편, 사업회는 피케이엠 갤러리와 함께 25일부터 이 화랑에서 권진규의 석고상, 청동상, 테라코타상 등 수작 23점을 내놓는 ‘권진규의 에센스’ 전(10월14일까지)을 마련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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