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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ESC] 원숭이 다이어트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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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김홍민의 탐정놀이

비만, 이별의 이유가 되다

여러가지 다이어트법 도전

실패로 돌아간 비만 탈출

우연히 ‘원숭이다이어트법’ 알게 돼

거대해지는 원숭이

야위어가는 내 몸뚱아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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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며칠 전 서점에 갔다가 굉장한 문구가 아로새겨진 책을 발견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운동 없이 매일 0.5㎏씩 살이 빠지고 아이큐(IQ)를 20이나 올린다.” 책에 적힌 프로그램을 수행한 결과 저자는 무려 50㎏을 감량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이렇다 할 감흥이 없었을 텐데 요즘에는 이런 문구와 마주하면 한 번쯤 들여다보게 된다. 여기서 ‘예전’과 ‘요즘’을 나누는 기준은 내 나이가 마흔을 넘긴 어느 날쯤이겠다. 마흔 살 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집중해서 운동하면 살이란 빠지는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한데 마흔이 넘어가면서 그런 자신감이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는 월급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먹는 걸 줄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랫동안 자취를 해왔다. 요리라고까지 얘기하면 거창하지만 집에서 이런저런 음식도 자주 해 먹는 편이다. 문제는 1인분에 딱 맞는 양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거다. 늘 넘친다. 2인분이나 3인분이 되고 만다. 다른 1인 가구 생활자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미련하게도 나는 그걸 전부 먹는다. 나중에 먹는답시고 냉장고에 보관해 놓으면 필시 음식물 쓰레기가 되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음식 버리면 죄받는다”는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 탓이리라. 게다가 “너는 혼자 뭘 맛있는 걸 처먹길래 볼 때마다 살이 찌느냐”고 타박하는 엄마가 툭하면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는, 실로 밥도둑이라 할 만한 반찬들 때문에 이만저만 곤란한 게 아니다.

그 무렵부터 나는 효과가 있다는 다이어트 요법을 조금씩 시전해 보곤 했다. 책을 사서 따라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음식물 섭취에 관한 내 의지가 워낙 박약해서 대개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가입한다는 모임을 알게 됐다. 개인별 목표를 세우고 서로서로 독려하며 식이조절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었다. 주로 온라인 카페에서 의견을 나누지만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한다. 남녀 비율은 반반이었는데 연령층은 다양했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와 친해졌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준 경험담이다. 혹시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밝혀지면 곤란할 테니 구체적인 지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 나이는 마흔한 살, 미혼이다. 그리고 뚱뚱하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우량아였다고 한다. 부모님은 고깃집을 운영했다. 덕분에 냉장고에는 늘 각종 고기가 재워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불고기를 구워 먹고 도시락으로 갈비를 싸 갔으며 야식이 삼겹살인 건 흔한 일상이었다. 그는 뚱뚱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뚱뚱한 청소년기를 지냈으며 뚱뚱한 대학생이 되었다. 초고도비만 판정을 받고 군 입대는 면제되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일찌감치 미식의 즐거움을 깨달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각 나라의 음식문화를 공부했고 여행을 가면 언제나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 배가 터지도록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학생 한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두 사람은 서울 시내의 각종 맛집을 전전하며 영어로 대화하곤 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십대 중반으로 유학을 준비하며 영어학원에 등록한 여자는 누가 봐도 미인이라 할 만한 타입이었다. ‘이런 여자가 왜 나에게’라는 의아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여자도 집을 나와서 자취를 하는 처지였다. 둘은 서로의 방에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잔뜩 취한 채로 했던 첫번째 섹스는 자신에게도 여자에게도 실망만 안겨주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발기가 되지 않았던 거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자는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채 유학을 떠난다.

뒤늦게 여자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벗은 몸을 유심히 살펴봤다고 한다. 축 처진 살덩이들이 눈에 거슬렸다. 쪼그라든 성기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내내 그가 매달린 건 인터넷이었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별의 아픔은 이내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다는 결연함으로 바뀌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원 푸드 다이어트’였다. 인터넷에서 대충 살펴본바,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그는 이해했다. 그래서 첫번째 일주일 동안은 삼겹살만 먹었다. 그다음 일주일은 닭요리만 먹었다. 그다음 일주일은 피자만 먹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체중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괄호를 쳐두고 방법만을 탓했다. 이건 틀렸다. 다른 걸 시도해보자. 다행스러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이어트 요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다. 불행한 것은 뭐가 됐든 그걸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거였지만. 지중해식 다이어트, 바나나 다이어트, 덴마크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키토산 다이어트, 현미 다이어트도 해보았고 구역질 나는 액체 단백질 다이어트까지 감행했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음식을 입에 넣으면 반드시 한 번은 포크를 내려놓도록 행동 교정도 받아보았고 음식을 조금만 담아도 듬뿍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조그만 접시들만 써보기도 했고 자기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모조리 공책에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체중은 요지부동이었다.

비참함은 어느새 극에 달해 있었다. 학원에서도 걸핏하면 학생들에게 신경질을 내는 통에 클레임이 들어올 정도였다. 불쑥불쑥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묘한 메일을 받았다. 최근 북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다이어트 요법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운동 없이 아무런 기구도 사용하지 않는 획기적인 방법, 원숭이 다이어트”라고 적혀 있었다. 원숭이 다이어트라니. 듣도 보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용어였다. 그런데. 이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는 데 성공했다는 모델로 등장한 이가 떠난 여자친구였던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하단에는 전화번호도 없이 주소만 달랑 적혀 있었다. 결국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은 주말이었던 고로 그는 예의 주소지를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은 인천의 한 부둣가로 그를 안내해 주었다. 사람의 통행이 뜸하다 못해 여기에 누가 살고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지저분한 곳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는 우중충한 건물 주차장이었다. 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메일에 적힌 주소였다. 설령 이 건물에 다이어트 센터 비슷한 게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위험천만한 돌팔이 요법이나 제공하는 곳이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모델로 등장한 여자친구에 관해 물어보려면 들어가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가게의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종이 딸랑거렸다.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내는 조그맣고 번득이는 눈으로 금세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아, 원숭이 다이어트!” 사내는 지금껏 그가 만난 이들 중에서도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사내가 다시 한번 기대에 찬 어조로 “원숭이 다이어트!”라고 말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일말의 기대감과 여자친구에 대한 궁금증이 무제한 회전초밥집의 접시에 놓인 초밥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뇨, 제가 잘못 온 것 같네요.” 하지만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엄청난 힘으로 그를 안쪽에 있는 방 안까지 끌고 갔다. 느닷없이 등 뒤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쥐가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 같았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문득 뭔가가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으악, 뭐야 이거.”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사내는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원숭이. 그거 원숭이야. 원숭이 다이어트 하는 거야.” 그는 몸을 떨며 정면에 있는 거울을 응시했다. 등에 원숭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아주 조그만 놈이었다. 머리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가 원숭이를 떼어내려고 하자 사내는 “그거 날씬해져. 원숭이 다이어트. 날씬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다. “됐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원숭이가 등에 붙어 있는 그를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가, 가. 원숭이 다이어트 해줬어. 이제 가. 원숭이 다이어트 무료야.” 그러고는 문을 닫아걸었다. 고함을 지르며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쪽 손을 등 뒤로 돌려 원숭이를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잽싸게 몸을 피하는 원숭이를 잡을 수는 없었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일단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배고픔을 느끼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는 냉장고에서 눈에 보이는 음식을 모조리 식탁으로 꺼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급한 대로 식빵 한 조각을 집어 들고 입가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통수 쪽에 있던 원숭이가 그것을 홱 낚아챘다. 다음 순간,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원숭이는 기다란 꼬리로 우유를 집어 들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세상에. 이것이 원숭이 다이어트의 정체였던 것이다. 그 뒤로 며칠간 그가 입에 넣은 음식은 거의 없었다. 원숭이는 그에게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을 허용했다. 그가 원숭이에게 공격을 가하려 하면 원숭이는 잽싸게 피하며 그의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세게 비틀거나 엄청난 펀치로 뒤통수를 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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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에게는 식욕의 한도가 없는 듯했다. 그의 손에 들린 음식은 전부 원숭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몸집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폭력적인 성향도 강해졌다. 그가 원숭이의 심기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가차 없이 구타가 자행되었다. 그는 점점 살이 빠지는 것을 자각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던 거울 앞에 섰을 때 그는 야윌 대로 야위어서 숫제 해골처럼 보이는 우중충한 사내와 마주할 수 있었다. 반면 원숭이의 모습은 원숭이 다이어트를 시전해준 가게의 추악하기 그지없는 주인을 닮아갔다. 대관절 그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너무 궁금해서 한 번쯤 체험해 보고 싶다는 형제자매님들은 조지 마틴의 소설 <원숭이 다이어트>를 살펴봐 주시길.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일러스트 이민혜

※이 콩트는 필자가 독자들이 ‘읽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도록 다양한 소설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방식인 ‘궁금증 유발적 소설 각색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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