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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그래픽노블로 만난 전쟁사진 대가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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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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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진의 대가 로버트 카파의 일대기를 다룬 그래픽노블 <로버트 카파, 사진가>(글·그림 플로랑 실로레. 포토넷 펴냄)가 나왔다. 그동안 카파를 다룬 전기, 영화 등은 여럿 있었으나 그래픽노블로 소개된 것은 한국에선 처음이다. 사진이 발명 공표된 것은 1839년이고 취미 혹은 기록의 용도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으나 더 많은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계기 중 하나는 전쟁이다. 1853년 영국의 크림전쟁,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이미 종군사진가들이 활동했고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여러 생생한 모습들을 알렸다.

이후 인쇄술의 향상에 따라 신문과 잡지에 사진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포토저널리즘의 시대가 개막되었고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전쟁을 직시하게 되었다. 언론매체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전쟁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면서 또 동시에 “도대체 누가 이런 위험한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숱하게 많은 사진가들이 전쟁터에서 명멸했다. 그중 단 한 명의 이름을 든다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로버트 카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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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인 로버트 카파의 본명은 엔드레 프리드만이었다. 파리로 온 무명의 사진가가 사진을 팔기 위해 지어낸 이름이 미국인 느낌의 로버트 카파였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 사진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아랍-이스라엘 전쟁까지 두루 섭렵했으며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하면서 전쟁사진가의 이력을 마감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로버트 카파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첫 상륙정에 올라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를 뚫고 해변으로 기어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11컷의 필름이 살아남아 <라이프>지를 장식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훗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들 때 로버트 카파의 상륙작전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스필버그는 그 11컷의 사진을 ‘매그니피선트 11’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픽노블 <로버트 카파, 사진가>엔 카파가 남긴 유명한 사진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카파가 남긴 사진과 달리 카파가 카메라를 들고 그 장면에 끼어 있다. 그림이니 가능한 일이며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쓰러지는 병사’ 장면을 우리는 카파가 남긴 정면사진으로 기억하지만 <로버트 카파, 사진가>에선 쓰러지는 병사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로버트 카파가 카메라를 들고 그 순간을 찍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물론 실제로 카파가 그 쓰러지는 장면을 찍는 모습을 다른 사진가가 찍어준 적은 없다. 그러나 사진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장의 기록이니 분명 카파는 그 자리에서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전쟁사진가로서 카파를 주로 다루었으나 그 외에도 첫사랑 게르다 타로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같은 문인들과의 활동도 깨알같이 들어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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