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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한겨레 사설] 이주노동자 죽음 부른 ‘고용허가제’ 폐지 논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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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사연이 시행 14년째를 맞은 고용허가제의 그늘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1년7개월간 일했던 27살 케샤브 슈레스타는 유서에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다’며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 사건을 어느 특정 회사의 문제로 볼 일은 아니다. 14일 관련단체들이 기자회견에서 “고용허가제가 사람을 죽였다”고 주장했듯, 이주노동자의 직업 선택권을 극도로 제약하고 있는 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숙련 취업비자(E9)를 받고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3년 안에 최대 3번 직장을 옮길 수 있지만, 사용자의 승인이 있거나 부도와 임금체불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올해 들어 사업장 변경 문제로 고민하다 목숨을 끊은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두명 더 있다고 한다.

3D 업종 기피현상 타개책으로 1993년 시작한 산업연수생 제도는 외국 인력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보고 산재 보상도, 노동3권도 보장하지 않아 ‘현대판 노예제’로 일컬어졌다. 그나마 노동3권을 보장하고 공공부문이 직접 관리해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2004년 15개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허가제가 도입됐지만, 3년 장기 근로계약과 사업장 이전 제한 규정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비판받아왔다. 정부에선 잦은 이직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머나먼 이국땅에 일하겠다고 온 이들이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는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특별한 사유 없이 사업장을 자주 바꿀 까닭은 없다. 오히려 사업주가 이 조항을 악용해 차별과 강제노동, 임금체불 등 노동착취 행위를 하는 경우가 적잖은 게 현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체류 외국인은 200만명으로 10년 만에 두배가 됐다. 사회통합 비용 증가나 내국인 일자리 감소 우려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지만, 반인권적 독소조항은 우선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나아가 이주노동자 스스로 정주와 귀국을 선택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 전환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영세하고 열악한 작업장에서 노동을 맡아온 이들의 직업 선택 자유마저 박탈하며 ‘투명인간’ 취급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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