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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시론] 사라진 ‘100만원의 개혁’을 찾아서 / 신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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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 병원을 찾아 환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건강보험 개혁안을 발표했다. 비급여를 포함한 모든 질병 치료비의 보장 수준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등 가히 파격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언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공약 발표 후 국민의 반응은 그저 그렇다. 물론 북-미 군사대결로 아슬아슬한 한반도의 안보상황,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개혁안 내용이 국민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더욱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호의적이던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비판 논평을 냈다.

그러면 왜 국민의 감동과 시민단체의 지지가 식었을까? 현실적인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개혁안이 공약에서 후퇴해서다. 비급여를 포함하여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70%까지 올리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지만,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장률 80%에 모자란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아픈 이들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고 있는 상병수당은 아예 빠져버렸다. 무엇보다 전국민이 비급여를 포함해 100만원 이상을 부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던 18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후보의 호기로운 공약은 축소됐다. 19대 대선 그의 ‘100만의 개혁’ 공약에서는 하위 50%, 이번 개혁안에서는 하위 30%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후퇴하였다. 이것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던 ‘보편적’ 접근을 ‘잔여적’ 접근으로 전환하였다는 점에서 단지 후퇴가 아니라 ‘큰 퇴보’이다.

이렇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안들은 결코 만만한 정책이 아니다. 많은 국민과 보수진영이 걱정하는 안정적인 재정 운용은 극히 일부의 문제일 뿐이다.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낭비를 제도적으로 막는 지불보상제도, 일차의료와 공공의료를 중심으로 한 전달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오래된 환자들의 의료 이용 관행도 바꿔야 한다. 이른바 ‘정권의 명운’을 걸고 돌파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더 문제다. 이번 발표 과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과 시민사회의 동의와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과정을 생략한 채,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적 수사, 복잡한 정책 설계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몇개 시민단체와 한두 번의 비공식 간담회 후 그것으로 국민과의 소통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자리잡고 있다. 관료들의 저항도 넘어서지 못한 인상이다. 그러고선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논평에 섭섭함을 표했다고 한다. 정작 섭섭한 것은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급히 정책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고 국민에게 에스오에스(SOS)를 쳐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시민단체와의 대화가 중단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불길한 징조를 우리는 며칠 전 박기영 본부장의 임명 과정에서 보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번 건강보험 개혁안에서 사라진,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목표’, ‘국민이 참여하고 지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우선 대통령 산하에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 만들기 국민위원회’(가칭)의 설립 운영을 제안한다.

다시 한번 명토 박아 두자. 문재인 정부가 의지할 곳은 촛불시민밖에 없고, 지금의 권력도 이들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다. 그리고 촛불정신의 핵심은 “민심을 거스르는 자가 독재자”라는 것이며 이것의 적용은 예외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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