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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일사일언] 無常과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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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저자

조선일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사람들은 무상(無常)이라 하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떠올린다. 허무함, 덧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불교 용어인 무상은 본래 '세상 만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억겁의 인연의 결과로 현재가 있고, 현재의 행각(行脚)이 미래의 인연에 영향을 미치므로 공덕(功德)을 쌓아 성불(成佛)하라는 가르침이다. 일본에서는 그 본래의 뜻에서 일본적 미(美)의식을 도출한다. 벚꽃의 찰나의 핌과 짐에서 허무를 넘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현재를 미래로 연결시키는 성찰과 긍정의 심상을 이끌어낸다.

미묘(微妙)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뚜렷하지 않고 야릇하고 묘한'이다. 미묘 역시 본래 불교 용어다. 천수경의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그 이상 높은 것이 없고 깊고도 깊은 미묘한 법)'에서 유래했다. 여래(如來)가 깨달은 삼라만상의 오묘한 이치, 궁극의 진리가 미묘라는 것이다. 일본어 사전은 미묘를 '미세하고 구분하기 어려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움, 심오함, 복잡함의 느낌이 드는 것'으로 풀이한다.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음' 속에 궁극의 진리가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계절의 변화는 무상과 미묘의 혼재다. 어제와 오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 시공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다. 내일 역시 오늘로부터 미묘하게 변할 것이다. 그 미묘한 변화의 축적 속에 어느덧 춘하추동 계절이 바뀐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어제와 오늘의 재료가 같지 않고 하루 이틀의 묵힘이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묘미(妙味)를 더하기도 한다. 요리의 궁극은 시시각각 변하는 재료의 속성을 이해하는 안목에서 출발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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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진화와 발전 역시 무상과 미묘의 혼재다. 급격하고 과격한 변화는 안정과 균형보다는 충격과 혼란을 수반한다. 본시 복잡한 인간사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선의(善意)로 포장된 지적 오만과 편협을 스스로 경계해 볼 만하다. 무상과 미묘의 이치는 우리에게 절제와 지적 겸손의 지혜를 요구한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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