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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전영기의 시시각각] 핵 상상력까지 거세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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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원전 건설 중단하는 난폭성

위험한 이웃에겐 고슴도치 바늘을

중앙일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리 말씀드리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반대해 왔다. 그렇다고 핵무장의 상상마저 금지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멀쩡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 중단 조치는 한국인의 핵 상상력까지 거세하는 난폭한 정책이다.

한국에서 원자력은 처음부터 발전용(1958년 원자력법 제정)으로만 길들여져 왔다. 무기로서의 원자력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무기화 시도에 대해 그때마다 미국의 혹독한 견제와 압력이 있었다. 한·미 원자력협정(1956년)과 국제원자력기구(IAEA·57년 가입), 핵확산금지조약(NPT·75년 비준), 한반도 비핵화 남북 공동선언(92년 발효) 등 겹겹의 제한들이 핵 상상력을 억눌렀다.

현실의 억압이 크다고 꿈조차 꾸지 말란 법은 없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원전이 핵무기로 전환 가능한 잠재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안보 결핍감은 족히 2000년은 됨 직한 중국·일본의 침략 사건들과 6·25 남침 이래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속에서 자라났다. 결핍은 꿈을 낳고 꿈은 적절한 조건 속에서 현실이 된다. 중국이 세계 3위의 핵 강국으로 굴기했고, 북한이 미국과 맞짱 뜰 정도로 핵무기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본은 수십t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데다 우라늄 농축 시설도 가동 중이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핵보유국이 될 것이다. 한국은 신뢰는 적고 위험은 큰 이런 나라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있다. 이들이 앞뒤에서 핵으로 활개 치는 건 내버려 두고 한국만 재래식 무기에 만족해야 하는 모양은 어느 모로 보나 어색하고 불공평하다.

한국인의 가슴속에 핵 상상력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상용화된 원자력과 금지된 핵무장이 한국인의 의식세계에선 한데 버무려져 있다. 원전과 핵무기를 별개로 인식하는 미국인은 이해하지 못할 사고방식일 것이다. 미국에서 원전 건설을 영구 중단하면 그 나라에 지천으로 깔린 석탄화력·천연가스로 대치하면 그만이다. 미국의 원전은 그저 많은 종류의 발전원(發電源) 중 하나로 치부된다. 미 에너지정보청은 2022년 미국에서 원전 한 기를 새로 짓는 데 드는 1MWh 비용을 99달러(균등화 발전비용), 그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발전원들로 대치할 때 드는 비용을 57달러(균등화 회피비용)로 계산해 냈다. 원전을 새로 짓느니 기존의 발전원들로 대치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탈핵주의자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주 이 통계를 인용하면서 원전의 경제성이 낮고 태양광의 경제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예상치는 원전 기술이 수십 년간 후퇴하고 있고, 값싼 셰일가스가 풍부하게 채굴되며, 광활한 땅덩어리에 질 좋은 태양광이 펼쳐지는 지극히 미국적인 통계일 뿐이다. 세계 최고 품질과 가격경쟁력의 원전 기술, 빈약하기 짝이 없는 에너지 자원, 좁은 땅에 질 낮은 햇빛의 한국적 조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치다.

우원식의 발언에선 원전이 불러일으키는 한국인의 특별한 안보적 상상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원전 건설의 영구 중단을 단순히 여러 개 발전원 중 특정 발전원 한 개를 포기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상상력의 빈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태양광·풍력이 경제적으로 원전의 대체재가 될 것이라는 급진적 탈핵론은 그 자체로 근거가 희박하거니와 무엇보다 한국인의 핵무장 상상력마저 거세하는 것이어서 불길하다. 최악의 경우 우리도 핵을 가질 수 있다는 꿈 정도는 남겨둬야 하지 않겠나. 일말의 고슴도치 바늘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북한이나 중국, 미국이 우리를 덜 우습게 보지 않겠나.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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