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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비즈 칼럼] 창의와 자유가 먼저, 규제는 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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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


오늘날 서유럽 국가들은 잘산다. 마치 원래부터 부자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대륙 발견이나 산업혁명이 서유럽에서 발원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미지의 신대륙을 찾아 나선 대항해는 엘도라도의 꿈과 해상보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떠난 배가 다시 돌아오지 않더라도 보험 때문에 손해가 없었고 황금을 싣고 돌아가면 횡재할 수 있었다.

14년간의 조선 체류 생활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도 체불된 임금을 보험금으로 받기 위해 작성됐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표류기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대차대조표를 만들 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서유럽인들은 재산상의 위협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함으로써 번영을 누리고 있다.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규제와 보험을 들 수 있다. 도로 위의 자동차를 시속 60㎞ 이하로 주행하도록 규제할 수 있지만 보험에 들면 80㎞까지 달리도록 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규제와 보험이 조합돼 있다. 규제는 빠르고 일률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침해한다. 그래서 서유럽인들은 보험을 규제의 보완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보험회사는 계약자의 위험을 돈을 받고 떠맡는다. 계약자가 암에 걸리거나 환경을 오염시켜 손해를 일으킬 때 보상을 한다. 2010년 4월 미국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 사고로 187억 달러의 벌금과 422억 달러의 합의금이 발생하였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의 지적대로 보험제도 덕택에 정유회사는 물론 멕시코만 인근의 사람들이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구미 불산 사고를 계기로 환경오염 배상책임 보험의 가입이 의무화됐다. 불산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대신 보험가입을 조건으로 기업 활동을 보장해 준 조치였다. 그 후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다.

4차 산업혁명 등 사회현상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의견(what)들이 많다. 반면 어떻게(how) 할 것인가 논의는 적다. 규제는 경직적이고 획일적이라 기술혁신과 경제상황의 변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규제가 한창이다. 아무도 그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21세기 최대의 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데이터와 통계의 활용을 위해서는 규제에 있어 대안은 없는지 살펴야한다. 데이터와 통계는 국가, 기업의 힘이다. 더불어 금융의 핵심이다. 신생 스타트업 기업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식시장을 선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다.

배와 선원을 잃을 우려 때문에 신대륙 항해를 금지하였다면 오늘날 서유럽이 있었을까. 개인의 창의와 자유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나라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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