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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유레카] 신고리 원전과 매몰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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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극장에 1만원의 돈을 내고 들어가 2시간짜리 영화를 본다. 10분이 지났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 아무래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어찌 할 것인가? 이미 흘려보낸 10분의 시간과 한번 치른 티켓값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회수하지 못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매몰비용은 깨끗이 잊는다. 남은 시간 마저 영화를 볼지, 극장을 나가 다른 일을 할지를 따진다.

매몰비용에 연연해 판단을 그르치는 것을 ‘콩코드의 오류’라고 한다. 콩코드(Concord)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쳐 만든 세계 최초 초음속 여객기다. 세련된 디자인과 마하 2.04에 이르는 빠른 속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속도에 중점을 두고 몸체를 너무 좁게 설계해 탑승 인원이 100명밖에 되지 않았고, 연료 소모량은 많았다. 타 기종의 일등석보다 20%나 요금이 비싼데다, 비행거리가 짧아 취항할 수 있는 노선도 한정돼 사업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는 투자비가 아깝고 그만두는 것은 체면도 구기는 일이라, 사업을 계속 끌어갔다. 결국 적자가 크게 늘어나고 2003년에야 상업 비행을 중단했다.

심리학자 핼 아크스와 피터 에이턴은 1999년에 발표한 ‘매몰비용과 콩코드 효과: 인간은 하등동물들보다 덜 합리적인가?’란 논문에서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것이 성인 인간 특유의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재화를 낭비하고 있다고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지난해 6월 착공한 신고리 5, 6호기를 계속 건설할지는 시민배심원단한테 판단을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이미 공사비가 1조6천억원이나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돈으로만 따질 게 아니고 ‘국민의 안전’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게 원전 정책인데, 거꾸로 매몰비용에 더 연연한다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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