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4 (화)

쇼핑 리스트가 아니라 승리를 안겨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NYTㆍCNN, 트럼프 회담 교과서

트럼프 길게 주목 안해, 짧게 말해야

우리 역사 안다 생각하면 오산

중앙일보

첫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에 나서며 한ㆍ미 관계가 분기점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정상 다루기를 지켜본 뉴욕타임스(NYT)와 CNN이 제시하는 회담의 수칙은 '칭찬하라, 짧게 말하라'다. NYT는 “해외 관료들과 워싱턴의 자문 인사들은 정상회담을 놓고 몇 가지 규칙을 얘기하고 있다”며 외교가에 도는 '트럼프 상대법'을 요약했다.

①짧게 말하라=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길게 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고를 받을 때는 물론이고 해외 정상을 상대할 때도 최고경영자(CEO) 스타일이다. 피터 웨스트마컷 전 주미영국대사는 “트럼프는 방문객이 30분간 지겹게 웅얼거리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앞두고 참가국 간에 ‘4분 제한령’이 떨어졌다. 포린폴리시는 토론 중 발언은 2~4분으로 제한토록 하자고 회원국들 간에 얘기가 오갔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시간 주목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다.

②자국 역사를 안다고 생각지 말라=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정치와 외교 경험을 축적하지 않은 채 백악관에 들어섰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상황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내용을 놓고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다”고 전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역사는 고사하고 한국민의 정서를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기면 오산임을 시사한다.

③대선 승리를 칭찬하라=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회담한 상대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다. CNN은 “메이는 트럼프가 스스로에 대해 말했던 대목을 베꼈다”고 보도했다. 메이 총리는 1월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놀랍다(stunning)”고 평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을 “일하는 보통 사람들(ordinary working people)”이라고 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썼던 ‘트럼프 용어’다.

④오바마와 비교하라=트럼프 대통령의 내치ㆍ외치의 방향은 ‘오바마 지우기’다. 건강보험 개혁부터 이란ㆍ쿠바 때리기까지 모두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을 지우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식물 인간 상태로 돌아온 뒤 사망했던 오토 웜비어를 놓고도 “더 일찍 데려왔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며 사실상 전임 정부를 비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간파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월 정상회담 기자회견때 “우리의 동맹은 대단히 강하지만 당신의 리더십 아래에선 훨썬 더 강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전임자와 우회 비교했다.

⑤승리를 안겨라=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숨은 비법은 뭔가를 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승리의 전리품을 안기는 모양새에 있다. 웨스트마컷 전 대사는 “트럼프는 양자 회담에서 미국과 그 자신을 위한 승리를 얻기 원한다”고 단언했다. NYT는 “쇼핑 리스트를 들고 가지 말고 트럼프가 승리로 여길 협상안을 갖고 가라”고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구매 보따리를 넘어서 그의 협상력과 외교력으로 해외 국가들이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따르는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방식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입장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핵 전략,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등 양국 관계의 뇌관을 놓고 겉으론 지면서도 속으로 이기는, 즉 한국 입장을 내실있게 반영하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⑥가족을 챙겨라=트럼프 정부 출범후 반년을 넘긴 지금 ‘퍼스트 패밀리 챙기기’는 정상회담을 앞둔 해외 각국 정부의 상식 사안이 됐다. 대통령의 가족을 챙기고 대통령 앞에서 가족들과의 인간적 유대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2월 백악관 기자회견때 갑자기 “재러드,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을 아는지를 알려도 되겠나”라며 “(어렸을 때) 키가 작지 않았다. 항상 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과 긴장 관계인 해외 정상들도 맏딸 이방카는 꼭 챙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이틀 후 뉴욕 뮤지컬 관람때 이방카를 초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3월 카메라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고도 이방카를 독일에서 열리는 여성 경제인 국제회의에 초청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