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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엑스레이, 아름다움의 본질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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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주최로 한국 첫 전시 연 엑스레이아트 대가 닉 베세이

한국 엑스레이아티스트 정태섭 연세의대 교수와 대담

외모, 외형 등 피상적인 것들의 본질 드러내는 게 작업 목적

비행기, 사람, 꽃, 패션, 기계 등 다양한 소재 엑스레이아트 선보여



한겨레

닉 베세이가 2001년 제작한 보잉 777 여객기의 엑스레이 사진. 유나이티드항공의 의뢰를 받아 1500여장의 사진을 조합해 만든 세계 최대의 엑스레이아트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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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X)레이 하면 몸 안의 허연 뼈들을 비추는 으스스한 기술로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빛은 사물과 사람 내면에 숨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적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엑스레이아트’의 세계적 대가인 영국 작가 닉 베세이(57)는 “나는 예술가이자 엑스레이맨”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1895년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의 발견 이래 인체 내부를 투사하는 의료기술로 널리 쓰여온 엑스선을, 그는 몸과 꽃, 비행기, 기계 등에 투시하며 환상적인 사진 예술을 펼쳐왔다. 엑스레이를 미학적 철학적 매체로 부각시킨 주역인 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겨레> 주최로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첫 한국 전시 ‘엑스레이맨-닉 베세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21일 입국한 그는 개막식에 참석한 뒤 2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국내 엑스레이아트 중견작가인 정태섭(63) 연세대 의대 교수와 만났다. 국내에서 10여차례의 개인전을 열며 활발하게 작업 중인 정 교수와 닉 베세이는 작업세계와 엑스레이아트의 전망 등에 대해 격의 없는 의견을 나눴다.

베세이의 전시는 5개 섹션으로 이뤄졌다. 곤충, 사람, 자동차, 휴대폰, 꽃, 패션, 여객기 등 다양한 사물을 찍은 120여점이 나왔다. 특히 말미에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과 올해 공동작업한 발렌시아가 소장품 프로젝트 신작들이 공개돼 이채롭다. 엑스레이아트는 미술, 사진계에 생소한 군소 장르다. 동료 작가도 드물고 방사선을 쓰는 위험한 조건을 감수하며 작업해온 탓인지, 두 작가는 첫 대면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첫 화두는 사람의 몸 사진이었다.

“작업하다 보면, 산 사람을 찍고 싶어져요. 촬영도 합니다. 물론 인체에 허용된 방사선 연간 노출량(150밀리시버트) 아래로 낮춰 허가를 받고 하지요.”(정태섭)

“저는 방사선이 훨씬 세게 방출되는 산업용 기계로 작업해 산 사람은 거의 하지 않고 옛적 죽은 이의 뼈를 모델로 작업합니다. 50여년 전 죽은 이의 뼈 골격을 저만의 애칭으로 부르는 ‘프라다’가 단골 소재가 되지요.”(닉 베세이)

베세이는 자신의 작업 핵심이 피상적인 것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미지에 사로잡힌 세상은 피상적이고 천박해요. 나는 엑스레이로 사물의 실체를 보고 본질을 끄집어냅니다.”

일상 사물들이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하는 순간, 내재된 아름다움이 부각되고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셀카를 찍거나, 신문을 보고, 차를 타고 가는 승객들의 골격을 찍은 작업들이 다수 나와 있다. 인체 내부의 힘줄, 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선연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엿볼 수 있다. 중국산 섹스돌 인형의 경우 아무것 없는 텅 빈 내면을 비추며 소비문화의 공허감을 짚어 보여주기도 한다. 내면의 미학을 강조하는 닉 베세이의 말에 정 교수도 동감을 표시했다. 정 교수는 황금비례를 보여주는 고둥들을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겉모습을 바꾸는 성형수술도 내부 골격을 다듬어야 하듯 엑스레이아트는 그런 내면적 틀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가시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주느냐가 목적”이라는 지론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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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작 <엑스(X)-마그리트>.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파이프의 내부를 투시한다는 점에서 사물의 본질적인 가치를 되묻는 마그리트 원작과 흥미롭게 맥락이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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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보잉 777기를 투사한 닉 베세이의 2001년 대작으로 옮겨갔다. 이 작품은 미국 보잉사 여객기의 주요 부분과 부품들을 일일이 바닥에 옮겨 엑스선을 투사한 뒤 1500여장의 사진들을 찍고, 포토샵에서 일일이 조합해 만들었다. 정 교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인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공력을 들였는지 실감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베세이는 “제안을 네번 거절했던 작품인데, 준비부터 포토샵 과정까지 2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소수 장르인 엑스레이아트의 전망에 대해 두 사람은 과학의 발전이 늘 사진의 발전과 함께했다면서 낙관론을 펼쳤다. 디지털 환경이 엑스레이아트를 좀 더 쉽고 저렴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들이었다.

“엑스레이아트를 서구 인상파에 비유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경멸받았지만, 이미지의 힘에 많은 이들이 매혹되어 따르면서 유파가 형성된 것처럼, 엑스레이아트도 새 시대가 시작될 것이고, 많은 이들이 협업하면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다고 봐요.”(정태섭)

정 교수는 “종종 만나 국제적인 협업을 해보자”는 바람을 전했고, 닉 베세이는 “같은 아티스트로서 당연하다. 계속 의논해보자”고 흔쾌하게 답했다. 전시의 더 큰 목적이 달성되는 듯하다고 웃은 두 사람은 얼싸안은 뒤 나란히 서서 손목을 엇갈리게 대며 엑스레이아트를 상징하는 X자를 지어 보였다. 전시는 8월27일까지. (02)580-1300, 710-0747, 0748.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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