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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한겨레 사설] 정권이양기에 ‘사드 알박기’한 미국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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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한미군이 26일 새벽,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에 발사대와 레이더 등 핵심 장비를 기습적으로 배치했다. 사실상 사드 배치가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주민 동의와 설득 과정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행정적 절차도 무시했다. 최근까지 한-미 당국이 잇따라 ‘사드 배치는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듯한 말을 해 다소 안심했는데 군사작전처럼 야음을 틈타 전격 배치를 완료하다니 우리 국민의 뒤통수를 때린 셈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불과 13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번 행동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알박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대표적 사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고, 미국·중국과도 추가 협의하는 과정을 밟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기습 배치를 통해서 미국은 이런 움직임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해 버렸다. 동맹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역주민은 물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한국민의 반감도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와 시설 공사 등 관련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드 배치가 거의 완료된 단계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 등이 과연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지난 16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백악관 외교정책 참모가 ‘사드 배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불과 며칠 만에 이 발언을 뒤집었거나 그때 의도적으로 배치 강행 움직임을 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항공모함 칼빈슨호 항로 변경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이어,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신을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키우고 있다.

이번에 배치된 사드 장비의 사격통제 레이더는 중국 정부가 가장 문제시하는 ‘엑스밴드 레이더’다. 중국은 곧바로 “(한반도) 긴장 정세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며 “관련 시설의 철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4월 위기설’ 등으로 높아진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중국은 핵실험 자제를 강력 촉구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번 사드 장비 반입으로 한반도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미-중 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5·9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 추가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대통령후보들도 사드 배치를 대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접근해선 안 된다. 한반도 정세 안정이란 큰 틀에서 국민에게 뚜렷한 대안과 입장을 제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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