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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슈플러스] 1주일 새 엇갈린 유무죄… "양심적 병역거부 교통정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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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따라 같은 혐의 다른 판결 논란 / “사법부 신뢰도 떨어뜨려” 지적 / “인권침해”“시기상조” 갑론을박 / 해마다 500여명 범죄자 기로에 / 文·沈 대체복무제 도입 적극적 / 安·劉 “조건부 허용” 洪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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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법에서 말하는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는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대체복무법이 제정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지난 6일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박모(21)씨에 대해 서울북부지법 이정재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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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사의 판결이 나오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12일, 서울남부지법의 박정수 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모(22)씨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하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현재로서는 대체복무를 도입하기 어렵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며 “종교적 양심실현의 자유가 병역의무와 충돌할 때에는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5년에, 박씨는 지난해에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종교적 이유로 입영하지 않아 기소되었으나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하급심 법원의 엇갈린 판단은 이번뿐이 아니다. 같은 혐의를 놓고 법원의 판단이 재판부에 따라 달라지면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모두 3735명으로, 매년 500여명이 재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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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14일 오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쟁없는 세상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평화의 페달을 밟자` 자전거 행진을 하기에 앞서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


이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처음 나온 2004년 5월부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같은 해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결정을 내렸음에도 전국의 법원에서 엇갈린 판결이 잇따랐다. 지난해 10월에는 광주지법에서 무죄를 선고한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무죄 판단 사유의 적절성과 별개로 사법부가 스스로 신뢰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하급심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례나 헌재의 합헌 결정에 배치되는 판단을 하면서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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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면 국민들이 사법시스템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직업적 양심’이 아닌, 판사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정은 오히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들은 헌법이나 법률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러시아·타이완 등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실상 인정하는 쪽이나 우리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와 병역자원 감소세 등으로 쉽지 않은 형국이다. 다만 주요 대선 후보 상당수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대체복무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이라 차기 정부에서 손질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체복무제 도입에 적극적이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면 도입하겠다는 쪽이다. ‘보수 적자’를 자임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역시 ‘엄격한 조건’을 전제로 대체복무 가능성을 열어놨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방·의료기관 등 군복무에 상당하는 신체·정신적 부담을 지우는 ‘합리적 대체복무’여야만 병역 시스템을 지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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