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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우리 교육은 ‘썩은 물’…틀만 옮겨 담는다고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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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대선 후보 교육 공약 청소년 좌담회

현장 모르고 표심 치우진 공약 많아

무상교육·시민교육·학제개편 인상적

외고·자사고 폐지, 서열화 깨기 힘들 것

비판 두려워 돌려막기식 땜질 말고

새 정책 과감히 도전해주기 바라

정책 세우는 데 학생 참여 늘렸으면



한겨레

15일 서울 신촌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남우현(대일외고 2·왼쪽)군, 김예영(양정여고 3)양, 최현선(대원외고 2)군이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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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촛불 정국을 계기로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대선과 관련해서도 여러 곳에서 청소년 의견을 수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대안교육연대는 청소년들이 바라는 교육정책을 모아 후보들에게 제안했고,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은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운동본부’를 만들어 모의투표를 위한 청소년 선거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보면, 교육부 폐지나 학제 개편, 대입제도 개선부터 노동인권·시민교육, 인공지능 활용 교육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함께하는 교육>은 청소년 눈으로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직접 들여다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5일 서울 신촌 소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좌담회에는 세 명의 청소년이 참여했다. 이들은 평소 정책에 관심이 많아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이 직접 공약을 검증해보고 싶어서”, “다른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좋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이들이 밝힌 좌담회 참여 이유다.

남우현(대일외고 2)군은 성북강북 학생참여위원회 대표이며 교육청 공약평가단에서 정책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김예영(양정여고 3)양은 교내 정치소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분야별 대선후보 공약을 정리해 학교 게시판에 붙이고, 대선 전날 3학년 학생들의 모의투표도 진행할 계획이다. 최현선(대원외고 2)군은 전국 90여개 정치외교 동아리가 모인 ‘전국청소년정치외교연합’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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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약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해 달라.

현선 공약들이 비슷비슷하고 피상적이다. 표심에만 치우쳐 그런 거 같다. 왜 교육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내용이 없다. 대체로 나오는 얘기는 외고·자사고 폐지인데 해당 학교라 관심이 많다.

예영 ‘토론식 수업’, ‘거꾸로 교실 수업’이 좋다고 하니 공약으로 내세우지만 학교 현실을 잘 모르는 소리다. 우리 학교도 거꾸로 교실을 했었는데 입시에 도움이 안 되고 학생들이 힘들어하니까 한 학기만 하고 중단했다.

우현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느낌이다. 자유학기제 확대만 해도 그렇다. 자유학기제가 사교육을 조장하고 콘텐츠나 학교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에 대한 대책은 없고 무조건 확대하겠다는 건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거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꼽는다면?

우현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누구나 밥을 먹는 것처럼 교육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심상정 후보의 말이 좋았다.

현선 심 후보의 ‘시민교육 3종 세트(민주·평화·세계)’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독도교육’도 책만 나눠주고 수업은 안 한다. 내용 요약한 프린트를 주고 시험에 몇 문제 내거나 그마저도 안 하는 학교도 있다.

예영 노동교육, 시민교육이 중요한 건 알지만 학생들이 너무 바빠서 실질적으로 관심을 둘 시간이 부족하다. 어른들도 먹고살 만하고 여유가 있어야 정치에 관심을 보이듯 학생도 마찬가지다. 삶과 직접 연관되는 사안임에도 자세히 살펴볼 틈이 없다.

우현 석면 제거하고 노후 학교를 친환경 학교로 바꾸겠다는 심 후보의 ‘친환경 그린스쿨’ 공약도 좋다. 재난위험시설 E등급이면 학생들을 당장 건물에서 나가게 해야 하는데 예산 없다고 그대로 방치하는 학교도 있다더라.

예영 개인적으로 안철수 후보의 ‘552 학제개편’은 학생들이 성적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진로 탐색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좋았다. 물론 개편 이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은 없지만 다른 후보보다 혁신적인 태도는 돋보이는 것 같다.

-문재인 후보를 비롯해 고교 서열화를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외고·자사고 등을 폐지하는 안을 내놨는데.

우현 후보들은 학업적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특정 학교에 모아두니 나머지 일반고가 슬럼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모든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수능,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예영 우리 학교에 외고에서 전학 온 아이가 1등을 하니까 다들 등수가 밀려서 싫어한다. 외고나 특목고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일반고가 대입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 학교 애들이 오면 뒤처질까 싶은 한편, 우리 학교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현선 보편교육으로 돌아가 다양한 배움을 제공한다는데 보편적으로 망할 거 같다.(웃음) 일반고도 수준이 다 달라서 자사고보다 강한 학교도 많다. 무조건 폐지는 이상적인 정책이다. 결국 상대평가가 문제다. 경쟁적 입시체제를 바꾸는 게 우선이다. 외고의 가장 큰 장점은 토론이나 보고서 등 학업적 성취감을 주는 활동이 많다는 것이다.

우현 나도 단순히 입시만 따지기보다 다양한 교육활동을 한다고 해서 외고에 지원했다.

현선 외고·자사고 없어지면 과학고나 강남3구로 몰릴 거다. 과거 경기도에서 비평준화가 문제라고 해서 평준화로 바꿨다. 이른바 ‘경기고 시대’를 넘어 외고·자사고 시대로 왔는데 그걸 또 없애면 다시 경기고 시대가 될 거다.

예영 무조건 외고·자사고를 폐지해서 아래 수준에 맞출 게 아니라 위에 맞춰야 한다. 일반고에서 외고나 자사고의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도 후보들의 주요 공약이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수능 자격고사화,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내세웠다. 이에 대한 생각은?

예영 문재인 후보 말대로 대입 전형을 전체적으로 간소화하고 학종 확대하는 데 찬성이다. 정시나 논술에서 외고·자사고 애들 이길 수 없다. 우리 학교는 정시로 대학 가는 애들은 두세명뿐이고 수시 학종으로 많이 간다. 학종 확대에 찬성한다.

우현 우리도 정시는 10% 정도다. 나머지는 다 수시로 간다.

현선 우리는 학종보다 제2외국어 관련, 언어특기자전형으로 많이 간다. 학종을 무조건 늘리기보다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지금 학종은 교사 역량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담임 로또’라고 한다.

예영 웬만한 교사는 잘 써주려 하지만 일부 교사들 가운데 성의 없이 작년 학생들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다. 애들이랑 비교해보면 내신 등급별로 ‘탁월함’ ‘조금 탁월함’ 등 멘트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

우현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교사와 갈등이 생길까 봐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 괜히 밉보여 불이익 당하면 안 되니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현선 맞다. 뭔가 불만이 생겨도 우리만 이야기하면 찍힐까 봐 여러 동아리가 학생회를 불러서 다 같이 간다.

우현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나머지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로 평가하는 게 맞다. 대신 내신이 수능 구실을 할 거라 생각한다.

현선 수능 자격고사화는 절대평가랑 같다. 그럼 학생부랑 면접이 중요해지면서 교내에서 공부 잘한 애들한테 몰아주기 할 거다.

예영 지금도 3, 4등급은 학생부 ‘세특’(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거의 안 써준다. 등급별로 분량도 다르다.

우현 맞다. 세 명만 모여서 같이 읽어보면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웃음)

-결국, 지금 입시 제도에서 고등학교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무조건 많이 보내려 하고, 대학은 우수한 학생만 뽑겠다는 건데.

예영 큰 틀은 국가적으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잘하는 애들만 ‘잘해라 잘해라’ 하면 나머지 애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우현 상위권 학생들만 더 잘나가게 하겠다는 거지. 외고에서도 하위권 애들은 관심 없다. 교육을 권리가 아닌 ‘기회’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현선 성적은 달라도 똑같은 학생이고, 우리도 똑같은 국민인데 상대적으로 누가 더 관심을 받느냐에 따라 학교에서도 국가에서도 소외당한다.

우현 지금 상황을 보자면, 물이 있다. 고여서 썩어 있다. 이 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않고 어느 틀에 옮겨 담을지만 고민한다.

예영 무조건 대학만 잘 가면 성공한다는 문화 자체가 문제다.

우현 그런 면에서 대학을 평생교육화하고 전문화된 직업교육 시스템도 갖추겠다는 내용의 공약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현선 나도 그 점은 마음에 든다. 절대다수 학생이 원하는 것은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취직을 하고 60세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거.

우현 말로만 ‘고졸성공시대’ 하지 말고.(다 같이 웃음)

예영 대학 간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 ‘대학을 잘 가게 해주겠다’보다 ‘충분히 꿈꿀 수 있게 해주겠다’였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교육, 진로교육이나 고교교육 개혁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강조한 공약도 있었다.

현선 그전에 먼저 공교육의 틀을 정상화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없다. 지금 상황에서 드론, 인공지능 활용해 가르치는 게 가능한지부터가 의문이다.

우현 수강신청제, 무학년제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본다. 배우고 싶은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 저마다 다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예영 취지는 좋지만 지금의 대학입시와 맞물려 시행한다면 실질적인 참여도는 낮을 거 같다. ‘경기 꿈의 대학’(경기도내 고등학생이 교육청과 협약 맺은 서울 및 수도권 대학에서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진로설계 프로그램)도 우리 반에서 한명 신청했다. 내신에 수능, 스펙까지 챙기느라 입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진로 활동을 활발히 하기 쉽지 않다.

우현 내가 수학I이 부족하면 그것만 신청해 듣는 건 좋다. 하지만 수준별 수업으로 심화 과정에만 학생이 몰린다면 또 다른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현선 포커스를 정확히 맞춰야 할 거 같다. 학생 스펙트럼이 넓은데 모든 학생이 똑같은 능력을 갖출 수는 없다. 오히려 수준별로 나눠서 맞춤 교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우현 학생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데 공감한다. 학생들의 꿈에는 관심 없고 ‘4차 산업혁명 시대 애들을 이렇게 만들겠다’, ‘모든 흙수저를 금수저로 만들겠다’는 건 애초 말이 안 된다. 중요한 건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 자체다.

-대선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선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좀더 과감해지면 좋겠다. 지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도 비판받는 게 싫어서 돌려막기 식으로 땜질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을 해도 부작용이 생기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면, 일단 용기있게 시도했으면 좋겠다.

우현 얼마 전 정치권에서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잠깐 부각됐지만 이 내용을 제대로 거론한 후보는 없었다. 교육정책을 만들고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학생이 직접 참여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예영 ‘인적 자원’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거 자체가 문제다. 애들이 커서 사회 나가고 직장에 다니고 노인이 된다.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해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하는 애들을 더 잘하게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잘할 수 있도록 학생 한명 한명에게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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