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친절한 항공 여행(Fly the Friendly Skies)' 표방하는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생긴 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친절한 항공 여행(Fly the Friendly Skies)'을 홍보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미국 항공사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전혀 친절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이 오버부킹(정원 초과 예약)을 이유로 공항 보안요원에 의해 피를 흘리며 강제로 끌려 나오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항공사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승객이 69세 아시아계 남성으로 밝혀지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더해졌고, 항공사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출발해 켄터키주 루이빌로 향할 예정이던 유나이티드항공 3411편 여객기에서 벌어진 일은 11일 태평양 건너 한국 포털의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뉴욕타임스ㆍ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항공기가 오버부킹 되는 바람에 탑승을 완료한 승객 가운데 4명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발적으로 내릴 승객이 나오지 않자 항공사가 자체 기준에 따라 4명을 선택했는데, 이 가운데 3명은 항공사 측이 제시한 보상에 동의하며 순순히 내렸다. 마지막 승객 한 명이 끝내 내리기를 거부하자 항공사 측이 공항경찰대에 연락했고, 보안요원 3명이 남성을 자리에서 끌어낸 뒤 두 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이 과정에서 승객은 복도 양쪽에 있는 좌석 팔걸이에 얼굴을 마구 부딪혀 피를 흘렸다.

일반 승객들은 “그만두라” “옳지 않다”고 소리쳤으나 보안요원은 멈추지 않았고, 이 장면은 여러 대의 스마트폰으로 촬영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피해 남성은 직업이 의사라고 밝히며 다음날 환자 진료 예약이 돼 있어서 내릴 수 없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승객 4명을 내리게 한 뒤 조종사 2명과 승무원 2명을 태웠다. 이 직원들은 다음날 운항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이날 루이빌로 이동했어야 한다고 유나이티드항공은 설명했다.

미국 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 한 해동안 오버부킹으로 인해 예약된 항공편에 탑승하지 못한 승객은 43만 명이다. 미국내 전체 항공 여행객(6억6000만 명)의 0.07%에 해당한다. 항공업계는 노쇼 승객이나 직전 항공편 연착 등으로 인해 승객이 탑승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관행적으로 정원을 넘어 예약을 받는다. 정원보다 많은 승객이 공항에 나타날 경우 약간의 보상과 다른 항공편 이용을 유도하거나 좌석 업그레이드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해외여행 중 오버부킹 된 항공기에 탑승한 한국인 승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승객이 내려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항공사의 선택이기 때문에 금액과 숙소 등 보상 조건을 협의하고 다음 항공편 일정을 체크해야 한다.

문제 항공편에 탑승했던 마이클 브리지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승무원이 800달러 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승객 윌 네빗은 “승무원이 의사 부부에게 가장 싼 항공권을 샀기 때문에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시카고 공항 경찰대는 성명을 통해 “보안요원의 행동은 적법 절차에 부합하지 않는다.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해당 요원들은 업무에서 빠진 상태”고 말했다.

사건 발생 직후 유나이티드항공의 대응은 시민들의 분노를 가중시켰다. 항공은 “오버부킹 상황에 대해 사과한다”고 짧게 밝혔을 뿐 피해 승객이나 두 시간 이상 연착한 데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스카 무노즈 최고경영자(CEO) 명의의 성명에서도 “우리 모두를 속상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승객을 재배치(re-accommodate)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피해 승객에 대한 강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재배치'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공분을 자아냈다. 무노즈 CEO는 임직원에게 보낸 별도의 편지에서는 “오버부킹시 정해진 절차에 입각해 승객을 항공기에서 내리도록 했다. 해당 승객이 업무를 방해했고 공격적이었다”며 승객에게 책임을 돌렸다고 CNBC방송이 보도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델타항공, 아메리칸항공에 이은 미국 내 3위 항공사다. 미국 항공사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노선을 가장 활발하게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스타얼라이언스 항공동맹에 속해있다. 2010년 컨티넨털항공과 합병 후 경영진과 노조가 갈등을 빚으면서 정시 운항률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임 제프 스미섹 CEO가 뇌물 스캔들로 조사를 받는 중에 사임했고, 2015년 9월 AT&T, 코카콜라 경영진 출신의 무노즈 CEO를 임명했다.

전문가들은 유나이티드항공이 어설픈 대응으로 심각한 경영 리스크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이 트위터에 언급된 건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고, 할리우드스타들까지 동참하는 보이콧도 시작됐다. 경영 리스크 컨설턴트인 에릭 쉬퍼는 “경영진이 여론과 고객을 대하는 법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이제 ‘유나이티드’는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 브랜드가 됐다. 브랜드 대학살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박현영 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