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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설왕설래] 재소자 조윤선의 외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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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누구라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다. 고위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라면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검찰은 강온 작전을 적절히 섞어 혼을 빼놓는다. 무엇보다 검찰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휴대전화라도 압수당하면 혹시 걸릴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래서 ‘1도, 2부, 3빽’(일단 도망간다, 그리고 부인한다, 뒷배를 동원한다)이 유효하다고 한다. 검찰이 쥔 패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구치소에 수감돼 수의로 갈아입는 순간 다시 한 번 무너진다. 조금 전까지 입고 있었던 복장은 교정당국에 맡겨야 한다. 복장은 사회적 신분을 규정 짓는다. 제 아무리 ‘FM 근무’를 자랑하는 직장인일지라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짝다리를 짚는다. 수의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가두는 작은 교도소와 다름없다. 수의를 받아들고 바라보는 제복 차림의 교도관은 하늘 같은 존재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신분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 지어진다.

재소자 복장은 성별, 형 확정 여부, 계절 등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미결수의 경우 겨울 기준으로 남자는 카키색, 여자는 연두색이다. 형이 확정되면 남자는 암청회색, 여자는 청록색으로 색깔이 바뀐다. 개인 부담으로 구입해 입는 수의는 색깔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교정당국은 다른 물품과 마찬가지로 의복의 외부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재소자 간 위화감 조성이나 수용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 안전 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미결수라면 수사기관이나 법원, 국회 등에 출석할 때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은 늘 검은색 사복을 입고 특검에 출석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0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한 달간 특검이나 법원에 나갈 때 입기 위해 사복 11벌을 반입했다고 한다. 그들은 수의 차림으로 언론사 카메라에 찍히고 사회적 위신이 깎일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렇게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게다. 그들의 일탈로 멍든 국민 마음은 무엇으로 달랠까.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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