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반성 후 고소? 피해자 두번 울린 '#문화계_성폭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화계_성폭력, 그 후①] '여성문화예술연합' 출범…문체부·국회 "정책 개선 모색할 것"]

머니투데이

/일러스트레이트=임종철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안하다. 뉘우친다"던 참회의 편지가 날이 선 '고소장'으로 되돌아오는데는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계 내 성폭력' 고발운동 이야기다. '#문단_내_성폭력'이란 해시태그로 시작된 성범죄 고발은 곧 미술·영화·디자인·사진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폭로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당시 지목된 가해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고 싶다", "용서를 구한다"는 사과문이 잇따라 게재됐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태가 공론화된 지 100여일, 양상이 변했다. 가해자 중 일부가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시작했다. 무형의 부당한 보복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던 피해자들의 우려가 유형의 법정공방에 휘말리는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된 것이다.



◇ "일부 가해자, 피해자들에게 겁주려고 고소 활용해…오히려 정식 수사하는 계기될 것"



"특정 날짜까지 '고발한 글을 내리고 사과문을 쓰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식으로 시작해요." (문학계 A씨)

"(피해자의) '고발 때문에 일이 끊겼다'며 막대한 액수를 보상 명목으로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폭로했던 글을 내리라고 하죠." (미술계 B씨)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지원하는 조직들에까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해요. 제3자에게도 위협을 하는 거죠." (영화계 C씨)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일부 가해자들의 이 같은 위협으로 피해자들이 자살을 기도하는 등 심각한 2차 피해를 겪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피해자들의 법률 지원을 돕고 있는 이선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모든 요구가 다 고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피해자들에게) 겁을 주려고 고소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법적 의미의 협박은 아니더라도 도덕적인 잣대로 봤을 때 과연 타당한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경우 (피해자가) 폭로한 내용이 사실을 적시한 것인지 판별을 우선 해야 한다"며 "(논란이 된) 성범죄 행위에 대한 진위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검경의) 정식 수사 절차가 시작되는 셈"이라고 했다.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는 것이 가해자들에겐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고소를 한다고 해도 '공익'을 위한 폭로로 해석돼 위법성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이 변호사는 "해당 분야에서 권위 있는 인물이면 공적인 인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고발로 볼 경우 명예훼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9개 단체 모인 '여성문화예술연합' 출범…문체부·국회 "현장 목소리 듣고 개선방안 찾겠다"

폭로의 '역풍' 속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의 연대는 공고해지고 있다. 최근 출범한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대표적이다. 피해 지원 혹은 재발 방지를 위해 각 분야별로 나뉘어 활동하던 문화예술인 모임 9개가 모였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도 가세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일 간담회를 추가로 개최, 문화예술계 현장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문화예술연합은 문체부가 실시하는 '예술인 실태조사'에 성폭력·성차별 관련 항목이 없는 점,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실태조사 대상에 문화예술계가 빠진 점 등 미비한 제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관련 특별 실태조사 실시 △문체부·여가부·노동부·교육부 등 범부처 TF팀 발족 △문화예술계 교육자 대상 감사 △성폭력 대응 및 신고 매뉴얼 제작·보급 △문화예술 종사자 대상 성평등 교육 강화 △표준계약서에 성폭력·성차별 금지 조항 추가 등 11개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문체부 측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연합의) 정책제안서 내용대로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 다른 부처와 협력해 정책을 마련하도록 힘쓰겠다"며 "제안서를 꼼꼼히 살펴본 뒤 실현 가능성과 계획을 전달할 수 있는 두 번째 간담회를 한두 달 내에 열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 입법 논의도 장기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현행 예술인복지법에 문화예술계 성평등 교육 의무화 조항을 추가하는 개정을 제안했다. 법조계에선 독일의 형법처럼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더라도 물리적·언어적으로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면 강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지원체계 마련이 긴급해 우선 거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20대 국회에서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에도 힘쓸 것"이라며 "토론회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여가부와 교육부 등 다른 부처와의 간담회를 추가로 추진할 계획이다. 신희주 공동대표는 "문체부도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지난달 토론회를 계기로 인지했다고 한다"며 "대학 내 성폭력 대응 모임과 면담하고 문화예술계 표준계약서에 대한 연구자료를 분석,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등 관련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구유나 기자 yunak@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