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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취재파일] 욕망의 대법원, 낯 뜨거운 상고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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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제된 상고법원 도입…사법불신부터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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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약한 조직입니다. 견제와 비판 보다는 보호가 필요한 조직입니다”. 법원을 처음 출입했을 때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던 법관의 말이다. 이 법관은 소위 법원 내 주류 판사들만 근무한다는 법원행정처 출신답게 여전히 법원 내 요직에서 근무하며 현재는 ‘약한 조직’ 법원을 위해 상고법원 도입에 고생하고 있다.

법조계 지식이 전무한 시절, 해당 판사의 말에 일정부분 공감한 게 사실이다. 사법부 독립이 헌법상 구문에 그쳤던 시절이 존재했기에 법원은 권력 생태계의 약자라고 생각했다. 검찰과 달리 인지(認知)를 못해 “아무런 힘이 없다”는 판사의 말에 법원은 외로운 섬으로 보였다.

판결을 두고 하소연 하는 소송당사자를 어김없이 악성 민원인으로 규정하는 법원이었지만, 논리정연한 판결문을 보고 있자면 허점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15년차 법조 출입 선배는 이 법관의 말을 두고 “법조계 최고의 거짓말이다”라고 평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선배가 말한 거짓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법부 독립이 보장받지 못한 시절, 스스로 사법권을 포기한 건 법관이었다. 사법부 독립은 판결로 확보할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한 채 권력 뒤에 숨었던 건 법원이었다. 대신 약자인 국민에겐 신뢰 대신 법정의 두려움에 의존해 승복을 강요했다.

법원은 이를 사법부 권위의 씨앗으로 삼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원인의 판결문엔 본인이 제기한 주장과 근거는 빠져있고, 법관이 결정한 판결 결과에 부합되는 근거와 논리만 포함돼 있다는 것도 몇 년 뒤에야 알게 됐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판 전단지를 살포하면 구속되지만, 공천헌금을 받은 유력정치인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노숙자가 음식점에서 수십만 원을 훔치면 실형을 선고받지만, 기업 회장이 주식회사에서 수백억 원을 빼돌려도 집행유예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법원은 또 소송 당사자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소송 당사자에겐 무조건적 믿음을 강요하는 것도 보였다. ‘신뢰할 수 없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현실 앞에 소송 당사자는 “빚을 내서라도 판사와 친한 변호사를 썼어야 하나, 전관 변호사를 쓰지 않아서 그리 됐다”며 근거 없는 자책만 반복하게 된다.

억울함에 지쳐 마지막으로 법원의 문을 두드려지만 악성 민원인이 됐고, 법원은 그들의 호소를 ‘법을 모르는 무지’에서 기인했다고 단정했다. 사법불신(司法不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 상고법원을 반대하면 사법부 현실을 모르는 무식한 기자?
7년 전 스스로를 약한 존재라고 칭했던 사법부가 이제 상고법원을 도입하려한다. 더 이상 “약한 존재”라고 하기엔 스스로 봐도 권력이 지나치게 커진 탓일까,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상고법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상고법원을 도입하면 사법불신을 해소할 수 있고, “수 조원의 경제효과도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기자에게 세일즈 한다. 정책 하나하나, 보도자료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상고법원으로 통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닌 상고법원으로 통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사법부 번영과 번성을 위한 유일무이한 길을 ‘상고법원’으로 삼자, 법원행정처와 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기마병처럼 종횡무진 밤낮으로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국민 재판권 실질적 보장’을 위한 유일한 정답이 상고법원으로 정해져 있어, 이를 반대하면 ‘사법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법조계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찬성 또는 반대’라는 양자택일 선택지를 뒀지만, 반대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고법원 도입을 논의하면서 정작 사법부가 밝힌 실질적 재판권 보장의 수혜자인 국민은 배제돼 있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상고법원을 찬성한다“고 한 시민 중 50% 이상이 ’상고법원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상고법원이 뭔지 잘 모른다‘는 응답결과가 나왔다.

상고법원이 뭔지 모르지만, 찬성한다는 말로, 희극 대본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공론의 장이 형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상고법원 도입은 불변의 진리‘라는 전제가 세워져 추진되는 상황이다.

대법원이 이토록 목을 메는 상고법원이 뭘까. 간략하게 대법원 말고 3심 재판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법원을 하나 만든다는 것이다. 현행 <1심 -> 2심 -> 대법원> 구조에서 <1심 -> 2심-> 상고법원/ 대법원 >으로 바뀌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여야 의원 168인 서명)이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민-형사소송법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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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조직법 개정안>
‘상고법원은 상고심 법원으로 대법원 외에 상고법원 신설(3조, 5조)’
‘상고법원은 판사 3명 이상 구성된 부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권 행사(7조)’
‘상고법원은 필수적 대법원 심판 사건 외 사건 담당, 대법원 심판 사건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건(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선거 당선 사건, 조례 무효, 군사법원 사건)(14조)
‘대법원 심판 사건은 경제적 파급 효과 가져오는 등 공적이익과 관련 있는 사건,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이상 중한 형이 선고된 사건(14조)’

<민사-형사소송법 개정안>
‘상고법원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는 때에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민소법 435조)
‘상고법원은 사건을 종심으로 심판하지만, 헌법 위반 판례 위반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대법원에 특별상고 또는 특별재항고 가능(민소법 483조, 형소법 40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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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계류 중인 <법원조직법, 민-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사건의 질과 규모에 따라 대법원과 상고법원에서 3심 재판을 나눠서 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떤 사건을 대법원에서 심리 할지는 ‘공적이익’ ‘파급효과가 큰 사건’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구문 때문에 대법원이 마음대로 선택 가능하다.

또 대법원이 상고법원 사건을 다시 가져올 수 있어 사실상 4심도 가능하다. 도입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차치하더라도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야기되는 중요사안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도입 과정에서 국민은 배제됐고, 사법부의 논리로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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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관의 업무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긴 대법원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 이유에 대해 우선적으로 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부담 때문이라고 말한다. 1993년 1만3천7백여건의 상고사건이 1만9천여건(2003년)으로 늘더니 3만6천여건(2013년), 3만7천여건(2014년)이 됐다. 20년간 3배 증가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13명의 대법관이 1명 당 2천8여건, 즉 3천여 건에 육박하는 사건을 매년 처리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사건 처리도 지연되면서 국민들의 재판권도 침해받는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집중 공략해서 대국민 선전을 하고 있다. 대법원이 SNS를 통해 상고법원 만화를 배포했는데, 이 만화를 보면 대법관에게 소속돼 있는 재판연구관(판사)의 집을 직장인 친구가 방문한다. 기업 임원으로 승진한 친구는 재판연구관에게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바쁘냐, 나는 임원이 되니까 좀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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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대법원 페이스북)

너도 나중에 대법관이 되면 나아질 것이다”라고 위로를 한다. 재판연구관은 “대법관도 여전히 일이 많다”며 “대법관은 취임한 날 하루만 천국이고, 그 다음날부턴 지옥”이라고 말한다. 사법부의 임원급인 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를 줄이기 위해 상고법원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만화는 끝난다.

헌법상 법관은 독립된 재판기관이지만, 만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법부 피라미드를 인정하고 있다.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대법관이 일반 기업 등 다른 조직의 사장이나 임원과 달리 일이 너무 많다는 전제에서 만화는 출발한다. 하지만, 대법원도 이런 만화를 배포하고 낯 뜨거워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법관은 비록 사법부의 어른임에는 분명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선 ‘3번째 심급에서 내 사건을 판단해줄 법관’이다. 납득 못하는 1,2심 판결에 불복해,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평가받아서, 또 법리와 법철학 그리고 사회에 가장 해박하다’는 이유로 법관의 정점에 취임한 대법관을 찾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현재 국민에게 있어 대법원의 필요성은 권리구제의 마지막 수단에 있다는 것이다.

분쟁에 있어서 법률적 사실을 확정짓는 중대한 역할을 대법관이 수행하기에, 법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청문회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무조건 3심까지 가자는 단순한 소송 욕구가 아니라, 청문회까지 통과한 대법관에게 ‘내 일생이 담긴 사건의 마지막 판단’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욕구는 이제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됐고, 어느새 우리 사회의 법률문화로 정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국민 입장에서 당연한 권리는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 회장의 주식 분쟁은 대법원에서 판단하고, 한 집안의 생계가 걸린 급여 소송은 상고법원에서 판단한다면 과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평등하게 보장된 것일까. 당연히 1등 시민, 2등 시민 논란은 불가피하다.

특히 이미 ‘마지막은 대법관’이라는 권리 의식이 확고한 상황에서, 국민으로부터 ‘재판할 권한’을 위임받은 사법부가 업무가 많다는 이유로 이제 국민 권리를 제한하려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개정안대로라면 대법원장이 임명한 상고법원 법관은 청문회 절차도 거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의 불복도 반박을 허용치 않는 3심, 즉 법적 진실을 확정지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는 건데, ‘대법관의 3심 재판’을 이미 문화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 대법원에서 대기업 임원을 꿈꾸는 대법관들
앞서 언급한 만화에서처럼 대법관은 대기업 임원보다 업무량이 훨씬 많을 지도 모르지만, 두 직업군을 비교 선상에 두는 건 틀렸다. 또 대법관의 업무과중이 사법부 불신의 원인이 될 수도 없다.

일반 기업에서 말단 직원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고, 부장이나 임원은 점심시간 한 시간 전부터 뭘 먹을 지 고민하는데 열중한다면 그 조직은 문제가 있다. 이보다 더 문제 있는 조직은 부장이나 임원은 종일 일만 하는데, 말단 직원은 스마트폰 검색이나 하면서 놀고 있는 조직이다. 법원은 여기서 어디에 해당할까. 둘 다 아니다. 법관은 개별 사업자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1심 법관이든, 항소심 법관이든, 대법관이든 심급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법관은 기본적으로 일이 많다. 법관 숫자는 적고 소송은 많으니 당연한 결과다. 대법관은 법조 경력이 20년이 넘었기에 격무가 힘들 수 있다.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억울해하며 상고를 많이 하는 국민을 탓할 수 없다, 헌법 탓을 하는 게 차라리 설득력이 있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한다’고 선언했다. 법관의 개별적 독립을 보장하는 건데,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 중 개별적 독립성을 가장 보장받는 조직은 단연코 법원이다. 쉽게 말해 ‘법원=법관’이다. 이 말은 개별 사건에서 지시나 지휘라는 개념이 법원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법관 인사권은 대법원장이 쥐고 있지만, 사건에 대한 지시권한은 없다.

1심 판사가 유죄라는 심증을 굳히고 판결문을 작성하고 있는데, 대법관은 무죄라고 생각해서 “무죄 판결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1심 단독 판사은 사건을 진행 중일 때 판결 내용에 대한 보고도 하지 않는다. 보고 해야 할 ‘상부’라는 개념이 없고, 보고를 받을 권한도 대법원에게 없다.

일반 기업에서 특정 사업을 추진할 때 담당 직원이 아이템을 착안하고 팀장-부장-임원-사장의 결재를 통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사업 아이템이 잘못됐을 때 그 책임은 결재라인에 있던 당사자들이 짊어지고, 특히 최종 결재권자가 가장 큰 책임과 비판을 받아야 하지만, 법원은 그렇지 않다.

1심 법관이 판단을 잘못했을 때 만화 속 임원에 비견되는 ‘대법관’이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또 어디서든 대법관을 향해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 말은 심급별로 법관에겐 주어진 일은 따로 있고, 심급이 높아질수록 일이 줄어들어야 하는 조직과는 구분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대법관은 상고심(3심)의 법관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역할을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할 뿐, 하급심 법관의 책임을 대신 지면서 역할을 수행하는 게 아니다. 이런 점에서 하급심 법관보다 업무 부담이 적어야 된다는 논리는 통할 수 없고, 업무량의 과소는 대법관직 수행의 본질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대법관이 사법부의 어른이라는 점을 존중하기에, 대법관 밑에 재판연구관을 두도록 하고 있고, 장관급 예우도 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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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심리불속행 기각률…재판권 보장보단 소수 사건만 심리하고픈 대법원
대법원이 공개적으로 “지옥”이라고 밝힌 대법관의 생활, 연간 3천 건에 육박하는 사건 중 상당수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끝난다. 흔히 ‘심불기각’이라고 하는데,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민사, 가사, 행정 사건 중 상고 이유가 부적합한 사건은 본안 심리 없이 기각하는 제도다.

기각 이유도 없는 사실상 한 장짜리 결정문인데, 주로 재판연구관이 상고이유서를 보고 판단하는 걸로 끝난다. 1994년 도입됐고, 심불기각률은 2002년 44%, 2009년 67%, 2014년 56%에 달한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적 본안 사건 수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절대 다수의 대법원 심리는 법정 변론이 아닌 서면으로 이뤄지고, 판결 초안은 재판연구관이 작성하고, 사건 요약과 자료 조사 역시 재판연구관이 한다. 즉 대법관이 처리하는 ‘1건’은 하급심 법관의 ‘1건 처리’에 소요되는 노동력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연간 3천 건의 사건에서 허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고, 숫자가 커질수록 업무과중이 비례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불친절한 대법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심불기각’은 사실상 상고허가제의 변칙적 형태와 다를 바 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법원은 여전히 상고법원 도입이 시급하다고 한다. 상고법원 도입이 성사된다면 심불기각제도는 폐지해도 상관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뤄진 공청회에서 심불기각을 ‘법률심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대법원은 법률문제만 따져야 하는데, 외형적으로 법률문제인 것처럼 상고되는 사건이 상당수라 비용 절약 차원에서 심불기각 제도를 운영해왔다는 자기 고백이다.

이 과정에서 ‘심불기각 사건’과 ‘대법원 본안 사건’의 외형에 본질적 차이가 없는데도, 대법원의 취사선택에 따라 심리방식이 달라지면서 불공평한 3심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이 경우 ‘심불기각’이 없는 상고법원에서 국민들은 재판받을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이면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직 정확한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상고법원은 고등법원장급 고위법관 20~30명으로 추진 중이다. 대법관 수보다 많지만, 도리어 심불기각 없이 운영된다는 점에서 상고법원 법관은 대법관들의 업무부담과 비슷하거나 가중될 우려도 있다.

이렇다면, 상고법원도 대법원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된다는 건데, 상고법원 도입 취지는 무색해지고, 대법원의 상황이 상고법원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는 구조가 된다. 결론적으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상고법원 도입이 시급하다”는 대법원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순전히 대법관은 취사선택된 소수의 사건만 심리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 업무부담 자처한 대법원
앞서 말한 심불기각 제도는 형사사건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형사사건에서 상고이유는 형사소송법 383조에 정해져 있다. 판결에 영향을 주는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을 때가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법적용에 위법이 있을 경우로만 대법원의 형사사건 상고를 제한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증인신문이 필연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실관계 확정은 1,2심에서만 이뤄지고, 대법원은 이런 사실 위에서 법적용의 위법성만 해석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작 대법원 형사사건에서 사실오인을 이유로 파기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용의 위법이 없으면 대법원은 ‘상고기각’으로 곧장 판단해 사건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지만, 스스로 사실관계까지 판단하고 나서면서 자발적으로 업무를 과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형사사건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사실관계”라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정짓는 권한을 대법원은 절대 포기하지 못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정권 실세 A씨에게 1,2심은 “A씨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해 뇌물죄를 적용해 유죄 선고했다. 대법원은 원칙대로라면 ‘돈이 A씨에게 건네졌다’는 전제하에 뇌물죄 적용이 정당했느냐를 따져야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증거채택이 위법했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관계를 판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여자 진술의 신뢰성이 의심되는데도, 이를 증거로 채택해 유죄를 선고한 위법이 있다는 말로 파기 이유를 설명한다.

이 경우 대법원이 채증법칙 위반을 발견하면서, 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판결문을 읽다보면 사실관계를 달리 판단하려는 게 주목적이고, 증거채택 위법성은 부수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 대법관 증원은 반대하는 대법원의 이중성
수사기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을 벌이고, 거물급 인사를 소환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 안전망은 붕괴하고 정부의 정책실패까지 겹치면서 기사거리가 쏟아진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기자들이 수사기관을 상대로 “일 좀 그만해라”, 제보자를 상대로 “제보 좀 하지 마세요”, 드러난 부조리를 두고 “이건 모른 척 넘어가자”라고 말을 한다면 납득할 사람이 있을까.

심적으로 고생한다며 위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드러난 기사거리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기사 작성을 하청 줄 수도 없다. 그나마 가능한 게 기자를 충원하는 거다.

대법원의 경우도 마찬가질 테다. 대법관 수를 증원하면 대법관의 업무 부담을 낮출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맞는 말이지만, 대법관 증원에 가장 반대하는 쪽이 대법원이다.

그 이유로 제시하는 게 ‘전원합의체’다. 대법원은 스스로의 역할을 개인의 권리구제가 아닌 정책심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3,4명의 대법관이 따로 소부를 구성해 판결하는 것은 지양하고,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해 정책심(政策審)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수의 사건만 심도 있게 심리해 사회 정책에 변화를 이끄는 정책심, 즉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법적극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전 어디에서도 대법원의 역할이 정책심이라는 건 찾을 수 없다. 당연히 국민의 요구나 합의는 없었다. 법률 적용의 위법여부를 따지는 역할로 규정된 법률심(法律審)인 대법원이 국민의 요구도 없는 상황에서 정책심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는 3권의 한 축을 정책심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사법부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깝다.

법원조직법 7조를 보면, 대법원은 대법관 3분의2 이상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재판권을 행사하는 게 원칙이다. 대법원도 이를 근거로 “대법관 수가 늘어나면 전원합의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선 대법원은 현재 소수(13명)의 대법관으로 얼마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려졌는지부터 자성했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물을 생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통해 소수자의 가치관까지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간과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사법부를 통해 이뤄지길 바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대법관은 구성부터 획일적이다. 3심 재판에 관여하지 않지만 대법관직인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해 대법관 14명 중 고려대 출신 김창석 대법관과, 한양대 출신 박보영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은 모두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또 검사 출신 박상옥 대법관과 판사로 재직하다 변호사 생활을 한 박보영 대법관 2명을 제외하면 14명 가운데 12명이 순수 법관 출신이다. 이런 구성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인지, 최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부터, 변호사 성공보수 금지 등 전원합의체 판결에선 소수의견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변호사 성공보수 사건은 당사자조차 해당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성공보수가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당사자는 이런 쟁점에 대해 의견조차 한번 제시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쟁점은 공개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는 다양한 의견 수렴이라는 전원합의체의 존재 이유에도 맞지 않다. 여러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건이 전원합의체 사건인데 자판기처럼 천편일률적인 대법관, 또 ‘그들만의 리그’에서 판단이 내려지니 결과가 정당했더라도 승복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식으로 전원합의체를 운영했던 대법원이 “다양한 의견 수렴과 합의가 힘들다”며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데,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 상고법원 도입은 위헌적 발상…유추해석의 금지 원칙 위반하는 대법원
사법부가 삼은 대원칙엔 ‘유추해석 금지’가 있다. 법문을 법문대로만 해석하지, 이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취지다.

이런 원칙 때문에 상식이 배제된 판결, 법기술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사법부는 “법은 법문 그대로 해석해야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법부가 ‘사법부는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 <헌법103조>’에 대해선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헌법조항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3심제인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 3심은 당연히 최고법원이 된다. 그렇다면 최고법원으로 규정된 대법원이 3심 역할로 규정된 것인데, 개헌 없이 3심을 상고법원에서 맡긴다면 위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3심이 대법원이라는 규정한 헌법 조항은 없다고 반박한다. 또, 우리 헌법엔 3심에 대한 명문 규정도 없어 3심이 반드시 최고법원으로 해석될 수 없고, 이를 근거로 모든 3심을 대법원에서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법기술자 다운 해석이다.

그러나, 반세기 넘게 3심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하는 걸로 받아드렸던 국민들 입장에서 이런 해석은 궤변으로 밖에 들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행정수도 이전 당시 관습헌법까지 인정했고, 한 때 시행됐던 상고허가제가 위헌 논란으로 폐지된 전례도 있다.

게다가 ‘헌법110조엔 군사법원의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관할 한다’고 명시돼 있어, 대법원의 해석대로라면 군인만 3심을 대법원에서 판단 받을 수 있도록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를 두고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직업에 따른 차별은 물론 남녀노소에 대한 차별도 허용하지 않고,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우리 헌법체계에서 대법원의 해석에 대해 나조차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어렵다”고 말한다.

이 판사는 “대법원의 해석에 동의를 표하는 법조인도 있겠지만, 위헌 논란이 있는 것만으로도 상고법원의 근거는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무리한 도입이라는 비판을 야기한다.

법원은 논란이 있는 것만으로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설사 상고법원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신뢰가 전제가 돼야할 상고법원이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 ‘정책심 헌법재판소’에 반대하는 대법원
대법원의 상고법원 추진 속내엔 헌법재판소와의 역할 분쟁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대법원이 소수의 사건만 심리하고 싶은 것도, 대법관을 소수로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지위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9명이고, 심리하는 사건 수 역시 대법원과 차이가 크다. 지난해(14년) 헌법소원, 권한쟁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 헌재에 접수된 사건은 모두 1969건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후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27년간 접수된 사건은 모두 2만7천7백여 건으로, 한 해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보다 1만 건이나 적은 수치다.

당연히 대법원 입장에선 헌재가 부러울 수 있지만, 닮아갈 필요는 없다. 대법원의 말대로 그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자신에게 유리한 사법제도를 도입할 때 “00국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 합니다”의 00국인 미국엔 헌법재판소가 없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두 국가에선 헌법재판소 기능과 대법원의 기능이 합쳐져 연방대법원과 최고재판소가 운영 된다.

그나마 독일에선 권리구제의 역할을 하는 연방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분리돼 있다. 그러나 독일헌법에선 최고법원으로 연방헌법재판소를 명시하는 한편, 재판소원(3심 재판의 위헌성을 헌재가 판단)도 가능해, 대법원과 헌재를 병렬적 지위관계에 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법학자들은 우리 사법체계를 두고 “아시아 입헌주의체제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헌재는 법률의 위헌여부 판단, 대법원은 법률에 대한 해석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때문에 헌재와 대법원의 권한 분장은 명확하다는 점에서 상고법원 도입이 두 기관의 지위 다툼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상고법원 도입은 대법원의 정책심, 사법적극주의 실현을 위한 필요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대법원의 주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헌재와 대법원을 분리시킨 건 시대적 요구였다. 사법권력이 대법원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대법원이 3권 분립의 한 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경험도 바탕이 됐다. 때문에 헌법재판소를 헌법기관으로 분리해 대법원과 병렬적 지위로 뒀고, 역할도 구분 지어뒀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나면서 헌재는 정책심 역할, 대법원은 권리구제의 최종심 역할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대법원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비록 두 기관은 병렬적 관계지만,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권한이 있고, 대법원에선 헌재 재판관은 대법관이 되지 못한 법관이 가는 자리로 여겨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고, 대통령 탄핵, 수도이전, 정당해산, 선거구 획정 등 헌재의 결정이 대법원 보다 파급력이 커지면서, 최고법원이라고 자부하던 대법원의 지위는 무너졌다. 우위를 점하다 병렬적 관계가 되더니, 이젠 그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에 봉착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위기감에서 대법원은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상고법원을 도입해 권리구제 기능을 떠넘기고, 헌재처럼 소수의 사건을 선택과 집중하는 한편, 대법관 수 증원으로 야기될 대법관의 권위 하락도 막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상고법원 도입의 다음 단계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통합 추진으로, 상고법원은 전주곡”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과 정책심 역할 증대는 헌재의 기능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법률해석’과 야간집회 처벌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재의 헌법 해석 기능’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자. 대법원은 법률해석을 통해 존엄사를 허용 또는 금지할 수 있고, 헌재 역시 헌법해석을 통해 존엄사를 허용 또는 금지할 수 있다.

게다가 헌재는 “0000방식으로 법해석을 할 경우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다. 반면,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을 인정(야간시위 한정 위헌)하고 싶을 때만 인정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조세감면규제법 한정위헌)엔 따르지 않고 있다. 결국 두 기관은 충돌 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퇴임식에서 한 대법관은 “두 기관의 관계가 단순히 호양적 관행으로 해결될 단계를 벗어난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검찰 관계자는 “더 이상 병렬적 관계로 갈등이 해소될 수 없자 두 기관 중 한 기관이 독보적인 우위를 점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상고법원이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고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상고법원에서 개인의 권리 구제 기능도 수행하게 하고, 이런 상고법원의 법관을 대법원장이 임명하면서 개인의 권리구제를 통한 사법권력도 유지하는 한편, 대법원은 정책심 역할 통한 사법권력도 가지겠다는 것이다.

● 법원행정처의 입법로비…욕망의 대법원
‘헌법에 위반 된다’는 형태로 법을 폐지시키는 법해석(헌재)이 아닌 기준을 제시하는 법률해석(대법원)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다소 구분이 애매하지만, 정책법원이 기준을 제시해 법적 분쟁을 종식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측면도 강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차라리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 기능을 두자”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이미 소수의 사건을 심도 있게 처리해 파급력이 큰 결정을 내리고 있는 헌재의 기능을 더욱 살리고, 대법원은 개인 권리구제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이다.

<헌법재판소법 68조: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규정만 삭제하는 식으로 법 개정을 하면, 국민투표까지 필요한 개헌 없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법원은 “법원의 재판까지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되면 사실상 4심제로 운영돼 위헌”이라고 말한다. 상고법원 추진 당시 “3심은 헌법상 명문 규정이 아니다”라며 상고법원 도입이 위헌이 아니라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 차이 이면엔 결국 사법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직결되는 사안인데도, 심도 있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한다. 그 방식과 절차 또한 정당하지 못했다.

사법제도의 근간이 바뀌는 중요사안이지만, 대법원이 택한 건 의원입법이었다. 때문에 추진 이전 검찰, 변호사단체, 학계, 시민이 참여할 기회도 없었다. 로스쿨 도입 때를 되돌려 생각해보면, 대법원의 상고법원 추진이 얼마나 부적절했고 편의주의적 발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해 법조 3륜은 물론 학계,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2년의 활동 끝에 로스쿨을 도입하기로 했다.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지만,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배출된 지 4년 만에 다시 사법시험 존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사시 폐지도 함께 결정됐지만, 다시 존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사개추위에서 상고법원과 비슷한 ‘고법 상고부’ 설치를 합의해 정부 입법까지 됐지만, 반대에 부딪쳐 폐기된 전례가 있다. 사법시스템 변화라는 게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민감하며 합의를 이루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대법원이 의견수렴과 논의는 생략한 채 의원 입법으로 서둘러 처리하려 하니 “도입 필요성은 고사하고 절차까지 위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어려운 문제는 어렵다고 인정하는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현 대법원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고 했다. 의견 수렴이 넓어지고 다양해질수록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을 테다.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며 소수의 천편일률적 대법관만 고집하듯, 소수만 개입해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의원입법을 택한 것이다.

출발이 잘못된 탓에 과정에도 잡음만 생긴다.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대법원의 상고도입 방침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자발적 또는 반강제로 국회로 보냈다. 행정처 판사가 의원과 의원 보좌관을 만나 사실상 로비를 펼치고, 술자리를 가진 뒤 지방에 있는 의원 집까지 배웅해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기업이 조직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법안 발의 로비를 하듯, 하나의 이익단체가 돼 버렸다.

행정처 출신 고위법관은 너나 할 것 없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광폭 행보를 벌이고 언론사를 찾아가 여론 조성만 시키면 통과는 문제없다고 자신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국민에 대한 설득과 의견 수렴은 사라졌고, 국민은 배제됐다.

앞서 상고사건 수는 지난해만 3만 7천 건이라고 밝혔다. 변화의 폭은 20년을 잘라봤을 때 3배 증가했지만, 따지고 보면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03년: 1만9천->2만->2만2천5백->2만2천9백->2만6천->2만8천->3만2천->3만6천->3만7천->3만5천->3만6천->14년: 3만7천>

여기서 대법원은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의미를 찾아냈지만, 핵심은 수치상의 변화가 아니다. 매년 꾸준히 판결에 불복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판결에 대한 신뢰도는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 사법불신은 상고사건이 많아져서 생긴 게 아니라, 사법부의 고질적인 문제 탓이다.

강요된 권위에 의존해 판결을 내렸고, 국민의 눈높이에 있는 법관이 아닌 법 위의 법관이라는 태도에서 기인했다. 상고법원 도입 역시 국민이 배제된 채 이뤄지고 있으니, 대법원은 또 다시 권위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쉬운 길로 가려는 국민에겐 절차를 강요했던 법원이 이제 지름길만 택하고 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상고법원은 국민이 원할 때 가능하지, 대법원의 필요성만으로 도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선 개헌과 국민투표를 추진해야지, 입법 로비로 가능한 게 아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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