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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천재비자'받고 미국으로 떠나는 초밥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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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내 최고의 스시 요리사 김원일 씨


우리나라 최고의 스시 장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김원일(58)씨가 ‘천재 비자’로 불리는 ‘O1’ 비자를 받아 3월2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한국에서 요리를 접고 미국에 새 둥지를 튼다는 얘기다. 미 국토안보국이 규정한 ‘O1’비자는 ‘과학, 예술, 교육, 체육 등의 방면에서 특별한 능력이나 성취(Extraordinary Ability or Achievement)가 있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비자. 비자 자격요건을 보면, ‘노벨상 수상이나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경우’, ‘아카데미상, 에미상, 영화감독 조합상 수상자나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자격을 갖춘 자’ 등이다. 현재 미국에서 약 9000명에게만 발급됐으며, ‘천재 비자(Genius Visa)’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출국 나흘 전 경기도 분당에 있는 그의 식당에서 만났다. 식당은 이미 폐업한 상태타. ―왜 미국으로 떠나는가. “97년 이 자리에 식당을 열고, 요리학교를 개교하는 게 꿈이었다. 94년 도제식 요리학원을 열었지만, 엄격한 교육 때문에 제자들에게 3번이나 소송을 당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었는데 교육부에서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며 규정상의 이유로 정식학교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 내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내꿈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런 비자가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부터 비자를 준비했나. “미국 변호사를 만났는데, ‘당신 정도면 충분히 O1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지난 1년간 준비했다. 내 책, 언론에서 나를 다룬 내용 등 나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으로 자료를 부치는데만 480만원이 들었다. 지난 1월2일자로 비자가 나왔다. 그는 지난 201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차라리 뉴욕에 가서 진검승부를 해볼까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우리나라 초밥 장인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김원일씨가 2일 미국으로 떠난다. 사진 위는 2010년 그가 운영하는 일식당에서의 모습. 아래 사진은 2월27일 그가 마지막으로 식당에 들러 주방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식당하면서 무엇이 가장 좌절이었나? “우리 식문화다. 값싸고 푸짐한 식당도 있고, 제대로 맛을 내는 미식가를 위한 최고급 식당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싸고 푸짐한 식당’이 유일한 미덕으로 꼽힌다. 벤츠타고 와서도 우리 식당 가격을 보고 돌려 나가는 사람도 있다. 일식당에서는 일명 쓰끼다시(곁들임요리)가 많아야 손님이 좋아한다. 정작 본 요리가 나오면 배불러서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맨날 ‘싸고 푸짐한’ 얘기만 한다. 텔레비전이나 신문도 문제다. 그게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김원일 식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초밥에 회가 너무 작다’ ‘요리사가 손님을 가르치려고 든다’고 욕을 했다. “생선 15g, 밥 20g을 합쳐 35g으로 만든 초밥이 제대로 된 초밥이다. 초밥이 입에 들어갔을 때 밥이 타액을 흡수하면서 맛이 결정 나는 거다. 생선은 약 8㎝가 적당하다. 생선 큰 것을 좋아할 거면 생선 먹고, 밥한숟가락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다가 흥분도 하고 그랬다.” 지난 인터뷰에서도 그는 ‘상도(商道)가 있으면 손님에겐 객도(客道)가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풋고추랑 된장 달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일식집에서만 그런 것을 찾는 건 요리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점이 섭섭했나. “싼 재료라도 최고의 맛을 내는 게 요리다. 이를테면 ‘무로 만든 후식’ 같은 것이다. 덜렁 멜론 한 조각을 내놓으면 ‘비싼 집이다’ 하지만 무를 조려 후식으로 만들면 ‘비싼 집에서 무를 후식으로 내놓으냐’ 하고 화를 낸다. 멜론 한 조각 내는 것보다 훨씬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외국인들은 ‘무에서 어떻게 이런 단맛이 나는가’ 묻고 또 묻는다.” ―이 식당의 요리는 수준급이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번 돈은 책10여권을 내는데 많이 쏟아부은 것 같은데. “책 17권을 내는데 약 20억원이 들었다. 이런 책이 나와야 서점에 가면 내 책은 저 아래 장 속에 넣어놓고, 위에는 ‘오천원으로 요리하는 법’류의 책들만 진열해 놓더라. 그래도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있어, 애들 공부시키고, 책도 냈다. 미국에서 일본 식당하는 사람들이 내 책 보고 요리를 했다고 하더라. 미국에가면 그 책들부터 영어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이다. 변호사가 미국측 출판사와 접촉 중이다.” ―미국에 가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워싱턴에다 식당을 낼 생각이다. 거기서 한 상에 2000만원짜리 요리를 내는 최고급 식당으로 승부를 내 보겠다. 그걸로 돈 벌어 미국 50개 주에 내 요리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다.” ―미국에서 일식이라면 이미 ‘노부(Nobu)’레스토랑의 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 같은 일본인이 꽉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 LA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찾는 일식당을 하는 후배가 내가 미국간다고 했더니 긴장된다더라. 그 식당이 1인분에 500달러다. 뉴욕에서 노부에서 나도 먹어봤는데, 요리로는 내가 앞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장사가 잘 됐으면,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을텐데 아쉽다. “내가 부족한 것도 있었고, 우리 식문화에 대해서도 섭섭한 게 있지만 꼭 그래서 떠나는 건 아니다. 올해 우리나이로 쉰아홉이 됐다. 예순부터 새 인생에 도전하는 것, 꼭 해보고 싶었다. 응원해 달라. 김원일은 57년 생. 부산에서 고교 졸업 후 부산 코모도 호텔 주방일을 시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베노쯔지 조리사전문학교, 대학원 다녔다. 일본 도쿄의 고급 레스토랑 ‘퀸 엘리스’에서 일했고, 사장이 끊어준 비행기 표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식당에 취직, 프랑스 요리를 배웠다. 1997년 경기도 분당에서 테이블 세개로 식당을 시작해 미식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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