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막가파’식 의사결정, 대학 지배구조에 맞선 교수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대기업 출신 이사장 들어온 서울대

직선 폐지 뒤 총장 선임한 연대 등

“이사회 전횡으로 대학 자율 훼손”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대학 위기론’이 팽배한 가운데, 여러 대학에서 ‘지배구조’의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사회의 독단적인 결정이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 장기간 내홍으로 이어지고, 무리한 총장 선출이 거듭되는 등 각 학교에서 ‘자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교수들이 학내 지배구조에 직접 문제제기를 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9일 오후 연세대교수평의회, 연세포럼 등 학내 단체들은 학술정보원에서 ‘연세의 지배구조 개혁과 대학의 미래’ 토론회를 열었다. 연세대와 서울대의 지배구조가 집중 성토된 이 자리에서 교수들은 최근 이사회, 대학평의원회, 총장선출제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두 학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법인과 사립대학인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연세대는 우선 학교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이 되다시피 한 가운데, 대학본부가 구성원들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백양로 재창조’라는 신촌 캠퍼스 재개발 사업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발표를 맡은 오홍석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7명에 불과한 이사회가 학교의 중요한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총장의 권한도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연세대는 전통적으로 의료원 교수들이 직접 뽑아온 의료원장 선출 방식을 학교 쪽이 더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지난 봄학기 내내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 대학 교수들은 총장 직선제가 폐지된 뒤 대학 자치가 실종됐다고 입을 모았다. 2012년 이후 이사회가 교수들이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기관장 선거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데 이어, 반기를 드는 교수들의 이메일을 검열하는 등 문제가 거듭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연세대 지배구조의 문제는 한국 사립대 전체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재단 이사회가 이사 구성과 선정, 중요한 의사결정, 총장 선임 과정에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이들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지배구조’를 발표한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는 법인 전환 뒤 이사회 제도를 처음 도입한 서울대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지난 7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하면서 ‘시장 논리’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샀고, 총장 선출에서도 잡음이 터져나왔다. 이사회가 총장을 뽑으면서 추천위원회의 추천 1순위자를 배제해 구성원들의 바람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이번 총장 선임에서 직선제의 폐단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다수 드러났다”며 “총장 선출이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사회가 그냥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주는 것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왜 우리의 운명을 외부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맡겼는지 회의와 착잡함을 금할 수 없으며 개혁 없이 지금 구조를 유지하는 한, 대학의 지배구조는 대학 자치와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이 지난 1일 발간한 고등교육 관련 월간 웹진 <대학혁명> 창간 준비호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법인화 이후의 서울대’라는 글에서 2011년 연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가 정식 출범한 뒤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법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말하며, 국가 공공시설로서의 성격을 지녔던 서울대가 특수법인이 되면서 재단적 성격을 강화하여 민영화되는 것을 뜻한다.” 지배구조의 개악 탓에 교원의 정년보장제는 기업처럼 계약연봉제로 바뀌고, 대학의 본래 기능인 연구와 교육의 자율 영역이 침해를 받고, 이사회에 재계 인사들이 충원되면서 수익사업이 맹위를 떨쳐 대학이 기업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한국대학학회는 20일 충남대에서 대전·충남지역 집담회를 열고 구조조정과 재정지원 사업의 연계로 대학의 자율적 개혁이 실종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참석자들은 각 학교가 재정지원 사업에 집착한 결과, 대학 행정이 지표 향상 일변도로 쏠리거나 관료지배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교수협의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일반 교수들도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7년 이후 정립된 대학의 민주화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학회는 이에 내년 2월까지 대학 구조조정과 지배구조의 현실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진단하는 지역 집담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30일 경기·수원(한신대), 다음달 17일 대구·경북(경북대), 25일 광주·전남(조선대), 11월14일 인천(인하대), 29일 충북(충북대) 등 전국을 행사를 열고 현황 파악 보고서를 내년 2월 완성해 발표하기로 했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 회장(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은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앞으로의 10년, 지킬 것을 지키고 바꿀 것을 바꾸지 않으면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의미있는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대학 운영의 비민주적이고도 봉건적인 관행, 국가와 시장의 과도한 대학 통제 및 개입에 맞서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 또한 잇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