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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정유정, 언제 적 사진이냐"…여야 모두 소매 걷은 '머그샷 공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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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부산에서 과외앱에서 만난 명문대 출신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정유정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범죄의 중대성ㆍ잔인성 인정되고 유사범행에 대한 예방효과 등 공공 이익을 위한 필요가 크다고 판단되어 공개를 결정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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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미국처럼 강력 범죄 피의자의 현재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 ‘머그샷(mugshot·구금 과정에서 촬영하는 범죄자 얼굴 사진)’이 공개될 수 있을까.

최근 ‘정유정 사건’을 계기로 범죄자의 증명사진이 아닌 머그샷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과외 앱에서 만난 명문대 출신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정유정(23)은 지난달 26일 현재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증명사진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왜 옛날 사진을 보여주냐”는 항의성 뉴스 댓글이 잇따랐다.

하지만 현행법으론 정유정의 머그샷을 공개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머그샷을 공개할 경우 피의사실공표죄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이후 강력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는 경찰은 대부분 증명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주로10~20대 때 촬영한 주민등록용 사진인데다 포토샵 등의 변형이 가해져 실물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이 제기됐다. 피의자 인권 보호가 강화된 뒤 체포 이후 머그샷이 공개된 건 2021년 12월 서울 송파 일가족 살해 사건의 범인 이석준 한 명 뿐이었다.

국회엔 여론의 요구를 반영한 법안이 여럿 제출돼 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5일 흉악범 얼굴 공개 시 ‘공개가 결정된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의 모습’을 공개하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1월 같은 당 송언석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제출한 데 이어 여당에서 잇따라 머그샷 공개법이 나온 것이다.

야권에선 이미 20대 국회 때부터 관련 법안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 들어선 김용민·이형석 의원과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각각 법안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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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부산경찰청이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공개한 정유정의 사진. 사진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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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자신을 성폭행으로 신고한 것에 앙심을 품고 전 여자친구와 그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하고 초등학생 남동생에게 중상을 입힌 이석준. 이석준은 신상공개가 결정되면서 본인의 동의 하에 증명사진이 아닌 머그샷을 공개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다. 사진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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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야 모두 법안을 낸 만큼 실효성 있는 범죄자 얼굴 공개 제도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정치권에선 흉악범의 머그샷을 공개하는 데 대해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정성희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절차상의 예측 가능성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안규백 의원도 “법안 자체에 여야 간 큰 쟁점이 없다”며 “신상공개 제도 실효성 확보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정점식 의원도 “여야가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라 법사위 상정 및 심사에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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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머그샷 공개 사례. 2018년 9월 부녀자 4명 연쇄살인 혐의로 체포된 국경순찰대원 후안 데이비드 오티스의 머그샷. 사진 미국 웹카운티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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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근 온라인에서 네티즌이 직접 강력 범죄 피의자를 신상털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초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살해한 이기영(33) 사례가 현행 법체계의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꼽힌다. 경찰을 통해 이기영의 증명사진이 공개된 뒤 온라인상에는 실물과 다르다며 이기영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시작됐고, 이기영의 현 여자친구 신상까지 공개됐다.

최근엔 ‘부산 돌려차기 여자 폭행범’의 신상을 한 유튜버가 공개해 ‘사적 제재’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이 폭행범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후유증과 피해를 남겼지만 현행법상 신상공개 대상자가 아니어서 증명사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해당 유튜버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범죄 예방 효과를 주장하며 피의자의 얼굴·사진·이름·생년월일·키·혈액형·전과기록 등을 공개했고, 해당 영상 조회수는 400만건을 넘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적 제재를 막기 위해 경찰 신상공개 대상자와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사안은 형사사법망의 확대 문제로 귀결될 수 있어 찬반이 엇갈리는 사안”이라며 “국민 여론과 현행 법체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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