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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도 원수도 꼭 갚는 민족. 무시무시한 보은(報恩)의 민족에게 등장한 재난 속 영웅이라니…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죠. 역대 최악의 경북 산불 참사 속 주민을 구한 외국인에게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이 부여됐습니다.
강풍을 타고 경북 북동부권 5개 시·군으로 급속히 번진 산불로 역대 최대 규모의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는데요. 이번 산불로 서울 여의도의 166배에 달하는 4만8239ha(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고, 30명이 목숨을 잃고 45명이 다쳤죠. 주택 3000여 동과 문화재 29개소가 파괴되는 대형 화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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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형 산불은 지난달 25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로 덮쳤는데요. 연기는 순식간에 마을을 뒤덮었고, 산자락과 가까운 주택가로 불길이 번졌습니다. 산불이 확산하면서 전기와 통신이 마비돼 몇 시께 불이 코앞까지 당도했는지 정확히 아는 주민이 없을 정도였죠. 당시 마을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들이 많은 데다 대피 안내방송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 그야말로 혼돈의 상황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젊은 편에 속했던 마을 이장 김필경(56) 씨와 어촌계장 유명신(56) 씨가 나서서 마을 주민들을 깨웠는데요. 이들 옆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청년 수기안토(31) 씨도 함께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오른쪽과 왼쪽, 중앙으로 달려가 고함을 치고 대문과 창문을 두드리며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죠.
고령으로 거동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수기안토 씨는 7명의 주민을 업고 나왔는데요. 8년 전 입국한 뒤 줄곧 이곳에서 근무한 터라 한국생활에 익숙했죠. 또 이웃 주민들을 “할매”, “할배”라 부르며 친숙하게 지내왔었기에 그의 마음은 더 애탔습니다.
6일 영덕군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산불 때 대피에 어려움을 겪던 할머니 등을 도운 인도네시아 국적 3명에게 이날 특별기여자 체류자격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수기안토 씨. |
움직이지 못하던 어르신을 업고 300m 떨어진 방파제까지 달린 수기안토 씨는 함께 있던 동료 디피오 레오(24) 씨, 사푸트라 비키 셉타 에카(24) 씨와 함께 주민들이 해경과 마을 주민의 배편으로 축산항에 이동할 때까지 함께했죠. 죽기 살기로 뛴 이들의 도움 덕에 주민들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는데요.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전하는 주민들에게 수기안토 씨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할아버지가 생각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로가 알려지면서 그는 법무부로부터 특별기여자 체류자격(F-2-16)을 부여받게 됐는데요.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특별한 공로를 세웠을 때 예외적으로 부여하는 ‘특별기여자 장기비자’인 셈이죠. 이 비자는 기존 취업비자(E-10)와 달리 거주지와 직업 선택의 제약이 훨씬 적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영주권(F-5) 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가족 동반도 가능하며, 자녀의 교육이나 의료 이용에서도 혜택이 확대되죠. 그와 동료들은 이제 한국에 합법적으로 장기체류하며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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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례가 처음은 아닌데요. 2016년 경북 군위군의 한 사과농장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 노동자 카타빌라 니말 시리 반다라 씨도 구조의 영웅이었습니다. 인근 주택에서 불길이 치솟자 그는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가 의식을 잃은 90대 노인을 업고 나왔죠. 구조 당시 니말 씨는 2도 화상과 폐 손상을 입었고,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당시 미등록외국인 신분이었기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병원비는 반환할 처지에 놓였는데요.
이런 니말 씨의 사연이 알려진 뒤 감사 인사와 함께 치료에 써 달라며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모였고, 법무부 또한 특별공로자 영주증을 수여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영주권을 받는 첫 사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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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빠진 한국인을 도운 사례는 외국에서도 들려왔는데요. 2022년 12월 23일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서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던 날, 한국인 관광객 10명이 차 안에 고립됐죠. 눈을 파낼 삽과 제설 도구를 빌리러 온 한국인들에게 현지 주민 알렉산더 캠파냐 씨와 그의 아내 안드레아 씨는 집 문을 활짝 열어줬습니다. 캠파냐 부부는 밥솥, 고추장, 김치를 갖춘 ‘한식 애호가’였는데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10명의 한국인에게 따뜻한 식사와 숙소, 담요까지 제공하며 2박 3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반드시 기억하고 갚아야 한다는 뿌리 깊은 마음. ‘은혜 갚은 까치’ 속 까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재난 속에서 손을 내밀어준 이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는 단지 생명을 구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문화’가 자리하고 있죠. 이 훈훈한 존중과 감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더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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