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의 순간 /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 최파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매경DB]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휴전 상태로 돌입할 것 같았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간 끌기에 더 암담해진 상황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제정세도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고 있다. 푸틴, 더 나아가 러시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이해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 황제’는 말이 없고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그는 2022년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런던정경대 교수이자 모스크바 태생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고르바초프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소련 붕괴의 순간을 재구성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적·정치적 폭풍이 들이닥쳤을 때 놀랄 만큼 무기력했다.
경제적·정치적 폭풍에 앞서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 참사는 모든 것을 망치며 나쁜 징조로 여겨졌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북부의 키예프(현재의 키이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체르노빌에서 네 기의 원자로 중 하나가 폭발하여 소련 기술자, 과학자, 관료를 충격에 빠뜨렸다. 고르바초프의 권위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람들은 ‘얼룩진 지도자’(그의 이마에 있는 모반을 가리키는 표현)가 불운을 가져왔다고 추측했다.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어도 고르바초프는 참사의 규모를 밝히지 않아서 다시금 권위가 훼손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원자로가 콘크리트 석관으로 덮인 후인 1989년 2월에야 체르노빌을 찾았다.
하지만 이건 지나친 처사였다. 관료제에서 노동자조합으로의 탈집중화이되, 잘못된 탈집중화였다. 조합들은 막대한 경제 자산에서 나오는 이익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한편, 소유주로서 국가에 지는 책임은 법률적으로 불분명하게 규정되고 강제력이 없었다. 조합들은 엄청난 이윤을 축적했지만 이를 새로운 장비에 투자하고 능률과 생산 품질을 개선할 동기가 없었다. 조합이 상업은행을 설립하는 것도 허용됐는데 1년 뒤 200여 개로 불어난 상업은행은 소련 금융 시스템에 규제되지 않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다.
소련 붕괴의 순간 |
고르바초프는 정치 자유화를 급진적 경제 개혁과 동시에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구조 개혁)나 글라스노스트(정보 공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개선하고, 공산당의 관료적 지배를 약화시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민주적인 자율적 조직의 전통도, 실질적인 법치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경제 혼란과 정치적 포퓰리즘, 민족주의라는 악령에 소련을 노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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