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 판사, 성범죄 재판 판단기준 분석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가 핵심 쟁점"
동의는 성행위 당시 존재해야…행위별 판단
법원의 동의 판단은 '실제 존재→유효성'
판례 변화…"성범죄 구성요건체계 전환 필요"
이창환(사법연수원 43기)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는 최근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재단이 발행하는 학술지 ‘사법’에 발표한 논문에서 강간죄와 강제추행죄 재판에서 ‘피해자의 동의’의 법적 의미와 판단 기준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최근 변화된 판례에 맞춰 현행 유형력 중심의 성범죄 체계에서 동의 모델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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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폭행·협박’ 기준에서 ‘동의 여부’로 초점 이동
31일 이 판사에 따르면 우리 형법은 성범죄 성립 요건으로 ‘폭행·협박’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재판 현장에서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그는 “유형력에 대한 완화된 해석론을 취하고 있는 현재 실무상 성범죄 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의 실질적 쟁점은 유형력 행사 여부 및 정도에서 피해자의 동의 존부, 즉 보호법익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로 변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또 “성적 자기결정권에는 성행위의 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성행위 자체에 동의했더라도 원치 않는 방식의 성행위까지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9년 판결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행위의 경위 및 태양, 피해자의 연령, 범행 당시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창환 판사는 이를 구체화해 동의 판단 과정을 두 단계로 설명했다. 먼저 피해자의 동의가 현실적으로 존재했는지 판단하고, 다음으로 동의가 존재하더라도 유효한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실제 재판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해자의 나이와 성향, 만남의 경위, 성적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 이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분석했다.
성범죄 재판에서 피고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의 주장을 펼친다. 이창환 판사는 이를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성관계에 동의가 있었고 폭행·협박도 없었다는 주장 △폭행·협박은 있었지만 성적 행위에는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 △폭행·협박이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주장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고 착오했다는 주장이다.
“성범죄 구성요건체계, ‘유형력→동의’ 전환 필요”
최근 법원의 판단 기준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지난 202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변경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않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성범죄의 성립에 피해자의 동의 부재를 본질적 기준으로 삼는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향후 강간죄의 판단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충실한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의 성범죄 구성요건체계를 기존의 유형력 모델에서 동의 모델로 전환하는 입법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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