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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 (목)

이오지마 간 美 국방장관 “日 전사들 용맹·희생 잊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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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日 총리도 동행… ‘파격적 의전’

“양국 동맹, 옛 적이 오늘의 친구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일본 이오지마를 찾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당시 적이었던 일본군의 용기와 헌신에 찬사를 바쳤다. 그러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었다”는 말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측 대표는 국방장관인 반면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직접 나서는 파격적인 의전을 선보였다.

29일 일본 이오토(이오지마)에서 열린 이오지마 전투 80주년 위령식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왼쪽)와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기념촬영 도중 활짝 웃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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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미 국방부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일본 본토에서 가까운 섬 이오토(硫黃島)에서 열린 이오지마 전투 80주년 위령식에 참석했다. 이오지마는 이오토의 옛 이름인데,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선 여전히 이오지마로 부른다. 행사에는 이시바 총리와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 등 일본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도 함께했다.

1945년 2월19일 시작해 1개월여 뒤인 3월26일에야 미군의 승리로 끝난 이오지마 전투는 2차대전 기간의 모든 전투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던 것으로 꼽힌다. 처음 섬에 상륙한 미 해병대는 압도적 병력으로 금방 이오지마를 점령할 수 있다고 여겼으나 이는 오산이었다. 섬 곳곳에 동굴을 파고 숨어 있던 일본군은 이동하는 미군 병사들을 기습해 커다란 인명피해를 안겼다. 1개월 넘게 걸린 전투는 섬에 있던 일본군이 사실상 전멸함으로써 끝났다. 이 기간 미군 6800여명이 전사했고 일본군은 무려 2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 해병대는 물론 일본군의 용기와 헌신에도 찬사를 바쳤다. 당시 이오지마 주둔 일본군 사령관인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 장군에 대해 헤그세스 장관은 “금욕과 결단력, 용맹함으로 육·해군 장병들을 이끌었다”며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아는 지피지기의 장수”라고 규정했다. 이어 “우리는 미국은 물론 일본 전사들의 명예와 용맹, 봉사와 희생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29일 일본 이오토(이오지마)에서 미·일 양국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이오지마 전투 80주년 위령식이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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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패전 후 일본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의 동맹으로 거듭났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일 동맹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된 과정을 보여준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 번영, 안보, 평화의 초석인 미·일 동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도 “과거에 전쟁을 치른 일본과 미국은 화해를 통해 서로 신뢰하는 동맹국이 됐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는 “전쟁의 참화를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진지하게 역사와 마주하면서 비통한 전쟁 체험을 세대를 넘어 전승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오지마에는 아직 수습하지 못한 일본군 유해 1만1000여구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시바 총리는 위령식 참석 후 별도로 유해 발굴 현장을 시찰한 뒤 “아직도 고향을 생각하며 이 땅에 잠들어 있는 유골들을 정부가 반드시 수습해 귀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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