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
대치동 학원가를 무대로 한 tvN 드라마 ‘졸업’(2024년)의 한 장면. 신입 강사 준호가 “읽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라고 하자 혜진(사진)은 “이 입시가 생긴 이래 그런 방법은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tvN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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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서울대 출신 경단녀 봉선아 우리는 서울대 발전기금으로 매년 10만 원을 낸다. 다른 의도는 없다. 그저 아파트 우체통에 서울대에서 오는 동창회보가 꽂혀 있는 게 보여서다. 은주야, 엄마가 지금 집에서 이렇게 있는 건 전부 너를 위해서야. 너도 알지? 엄마가 천만 원짜리 코디 선생님보다 더 나은 페어런트 컨설턴트라는 거. 애완돌 코지는 하루 종일 나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 ‘진아, 용기를 내. 내가 항상 응원할게’. 내가 아직 맨정신으로 살아 있는 건 오롯이 코지 덕분이다. #‘자칭’ 교육 전문가 좋게 좋게 했다가 나중에 수습 못 할 상황 만들지 마시고, 세게 할 땐 세게 해주세요. 애들 인생 한번 엎질러지면 다시 못 담는 거 아시죠? |
“세 가족의 자녀교육 분투기 속에 이 시대 부모들의 애환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24년째 영국에 거주하고 있다. 언어학, 이중언어, 영어 교육을 주제로 책을 펴내고 강연을 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그런 그가 ‘엄마’와 ‘교육’에 대한 소설 ‘서울 엄마들’을 펴내자 주변에선 “웬 소설?”이란 반응이 쏟아졌다고 한다.
자녀 교육, 먹고사니즘, 꿈, 고부 갈등, 배우자와 관계… . 그는 저글링하듯 쏟아지는 삶의 문제를 하나씩 해치우는 주인공들과 호흡하면서 수많은 엄마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나를 키운 엄마, 한국과 영국에서 만난 엄마들, 그리고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조지은 등이다. 20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책을 쓰면서 동시대 엄마와 아빠들의 사연에 이입해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고 했다.
―반려묘 이름도 ‘수능이’로 짓는 사교육 1번지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연구를 하는 사람이지만 글쓰는 게 평생 취미다. 안고 있는 이야기도 한보따리다. ‘서울 엄마들’은 지난해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학능력시험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선 착안했다. 세월이 흘러도 수능 시험 답을 밀려 쓰는 꿈 꾸고 그러잖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 한류 열풍이 불면서 관련 연구를 많이 한다. 한데 앞서 말했듯 한국의 수능은 미디어에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소비된다. 단 하루에 입시가 결정돼서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 약간 희화화되는 느낌이 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입시가 이렇게 알려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블랙유머를 가미해 한국 교육을 논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웃으면서 우리 교육에 대해 한번쯤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조지은 교수는 “‘서울 엄마들’은 한국 교육 현실을 블랙 유머로 그린 작품이다. 웃음 속에서 교육 현실을 한 번쯤 성찰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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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금묘아파트의 상징과 같은 금묘 동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단 하루로 입시가 결정되는 수능일에 많은 부모들의 자녀가 실력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수능날 교문에 엿을 붙이는 사진을 보고선 영국 친구가 이유를 묻길래 ‘엿처럼 시험에 붙으라는 뜻’이라고 하니 깔깔거리며 웃더라. 금을 두른 고양이인 금묘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기도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부모들을 이렇게 몰아가는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싶었다.”
―주인공 세 가족 모두 조금씩 삐그덕거린다. 은주 엄마는 특히 남편이 쓰러지자 걱정을 하면서도 ‘건강 관리도 제대로 못해서 시험 앞둔 애 앞길을 막나’라는 생각을 한다.
“자녀가 입시모드에 들어가면 다른 건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주말 나들이나 여행 횟수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 같다. 학교 시험과 학원 숙제 때문에 휴가나 명절도 공부 모드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족이 그렇게까지 희생하지 않아도 자녀가 건강하게 본인 자리를 찾아가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소설 전반에 담았다.”
―자녀의 독서 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4살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쓰는 리딩노트가 있다. 책의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한 페이지를 읽어도 상관없다. 책에 훅 빠졌다 나오는 경험이 중요하다. 아이가 책을 읽은 소감을 쓰면 거기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준다. 모녀가 책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글로 주고 받는 것이다. 1년은 쉽지만 그걸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다.”
“휴대전화보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거기에 몰두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데, 영국에선 학원 숙제가 없으니 아이들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물론 시각적인 요소가 가득한 휴대전화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각적 재미에 익숙해지면 집중력이 짧아지고 상상력과 사고력은 자라지 않는다.“
―학군지도 시대 흐름을 탄다. 요즘 학군지 부모들은 전략적이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것 같다. 목적과 경제상황에 따라 교육 가치관과 스펙트럼도 정말 다양하다.
“물론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태교부터 인생이 수능을 향해 달리는 것 같다. 아이들이 그 속에서 유년기의 즐거움을 박탈당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안타까웠다. 옆 사람이 달리니 같이 달리고, 모두가 죽어라 공부를 하는데 왜 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 시스템은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교육을 바꾸는 게 가능한가’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이 미래인 이유는 그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말로 긍정적으로 교육 담론을 하나씩 쌓아갈 적기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린 데다가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고 학생 수도 확연히 줄었으니까. ”
―한국 입시를 어떻게 진단하나.
“한국 입시는 평균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점수에서 학과별 점수 평균을 내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옥스포드대 입학처장 당시 학생을 뽑을 때, 평균이 아닌 탁월한 한 가지에 높은 가치를 줬다. 평균에 매몰되면 독특함을 보지 못한다. ‘평균 이상’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엄마들’은 한국 밖에서 서울 학군지를 관찰한 내용이다. 영국 교육에서 독특하다고 느낀 부분은 없나.
“동생이 국내 물리학 박사인데, 이틀에 한번 꼴로 연구실에서 밤을 새곤 했다. 모든 공학도들은 그렇게 연구하는 줄 알았는데, 영국에 오니 박사과정 학생들도 오후 5시가 되면 집에 가더라. 그런데 성과는 더 좋다. 이곳에 와서 양보다 질이고, 잘 먹고 잘 자야 뇌가 잘 돌아간다는 걸 실감했다.”
―가정에선 어떤 엄마인가.
“12살 16살인 아이들이 부모 품을 떠날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애잔함이 올라온다. 엄마로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싶다.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특히 남편과 교육 관련 대화를 하면서 ‘아니 한국에선 그래?’라고 되묻는 지점을 소설 창작에 많이 참고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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