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해결 나섰던 지혜복 교사…‘전보·해임 부당’ 1년 넘게 시위
젠더 투쟁과 연대…학창 시절 피해 경험 말벌 동지 껴안고 위로도
지난 3월 3일 서울 종로구 동덕빌딩 앞에서 열린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서 지혜복 교사(왼쪽)가 한 말벌 동지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김남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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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나타난 말벌 동지들이 연대하는 곳 중 하나는 지혜복 교사(60)의 시위 현장이다. 30년 넘게 중학교 사회과목 교사로 일한 지 교사는 지난해 1월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오전 9시 찾은 서울시교육청 앞의 찬 바닥에서 지 교사는 스티로폼을 깔고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 투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벌 동지들의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교사가 성폭력 해결 나서면 고립돼”
지 교사는 A학교 학생들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접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부당 전보와 해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 측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정보를 노출하는 등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를 신고했는데, 공익제보자 인정은커녕 기존의 인사 관행과 원칙에 맞지 않게 이동시켰다는 게 지 교사의 주장이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 12일 “(지 교사는) 공익제보자도, 부당 전보 피해자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지 교사는 ‘학교 내 성폭력의 해결’이라고 했다. 2018년 미투운동(#MeToo·나는 고발한다)이 확산하면서 학교 내 성폭력도 화두가 됐다. 일부 여고를 중심으로 피해 고발(스쿨미투)이 나왔다. n번방 텔레그램 사건과 딥페이크 사건 등에 10대 청소년들이 가해자로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고,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언급하면 ‘페미 교사’로 낙인찍는 백래시(반동)도 나타났다.
최근엔 10대 청소년들의 반페미니즘, 극우 정서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 교사는 학교 내 성폭력에 대한 미흡한 대처와 10대 극우화가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5일 오전 지혜복 교사가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 길바닥에 앉아 농성을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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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연행 과정서 ‘말벌 잡아라’ 언급도
지 교사는 1년 넘게 투쟁을 하면서 딥페이크 집회, 3·8 여성의날 파업, 동덕여대 집회 등 여러 젠더 관련 투쟁 현장에 연대활동을 했다. 학교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의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계엄 이후 2030 여성들이 탄핵 촉구 집회를 주도한 데 이어 말벌 동지들이 지 교사의 투쟁 현장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말벌 동지들은 X(엑스·구 트위터)에서 지 교사 투쟁상황을 공유하며 선전전에 동참했다.
지 교사를 만난 말벌 동지 중엔 울먹이며 자신들의 학생 시절 피해 경험을 이야기한 이들도 있었다. 지 교사는 그럴 때마다 말벌 동지들을 안아줬고, 말벌 동지들은 고마움과 연대의 뜻을 표했다. 지 교사는 “말벌 동지들에게 다른 해고노동자의 투쟁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연대이지만, 교육청 농성은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자기 싸움’으로 받아들이는 게 커보였다”며 “저의 농성이 (말벌 동지들의) 경험에 위로가 되는 느낌인 것 같다”고 했다.
투쟁은 순탄치 않다. 지난 2월 28일 경찰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선전전을 하던 23명을 갑작스레 연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연행된 이들 상당수가 말벌 동지였다. 지 교사를 지원하는 공동대책위원회는 “선전전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전부로 매우 평화적으로 이뤄졌지만, 경찰이 폭력적으로 연행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직원들의 출퇴근과 업무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며 “불법 시위를 중단하라”는 입장을 냈다.
경찰이 말벌 동지를 표적 연행하려고 한 정황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 배움터인 ‘이음과배움’의 김태윤 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떤 젊은 여성과 (교육청에) 들어갔는데 연행이 진행되고 있어 항의하자 경찰이 해당 여성을 잡아가려고 했다”며 “방금 같이 들어왔는데 왜 잡아가려고 하냐고 항의하자 한 남성이 ‘말벌이니까 잡으라’고 했고, 결국 경찰이 그 여성분만 잡아갔다”고 말했다.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이쪽으로 가라고 안내하다가 연행된 말벌 동지는 “사람이 길바닥에 내쳐지는 것을 보고, 또 내쳐지는 입장이 나의 입장이 되는 것을 경험하니 (투쟁) 현장에서 더욱 쉽게 발을 떼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누가 시켰느냐, 깃발을 누가 제공했느냐, 조직이냐 등을 물었다”며 “공권력이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메탈 저항’ 머리띠 매고, ‘덕질’하던 카메라 들고…말벌 동지는 투쟁하러 간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90900021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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