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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 (화)

'전기 뱀장어' 된 인간…에너지와 윤리를 묻는 '인간발전' [황덕현의 기후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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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정보문화재단, SMR 강조한 디스토피아 스릴러 OTT로 공개

에너지 부족한 극한 상황 속 벼랑 내몰리는 '취약계층'도 다뤄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박정혁 감독 작품 '인간 발전'(Human Electricity Generation) 중. 생체전기를 팔던 이의 몸에서 열이 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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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어릴 때 속칭 '딱딱이'를 당할 때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버튼을 눌러 스파크를 일으키는 휴대용 압전 밸브를 장난삼아 사람에게 사용하는 친구들을 꾸짖곤 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이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것도 있다. 사람에게 전기가 통하는구나.

사람은 전기가 통할 뿐만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생체 기계'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인간도 전기뱀장어처럼 강한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달 28일 개봉한 영화 박정혁 감독 작품 '인간 발전'은 이러한 상상을 신재생에너지 문제와 맞물려 디스토피아적으로 풀어냈다.

영화는 전력난이 심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체의 생체전기를 활용한 새로운 발전 기술이 등장하며 벌어지는 논란을 따라간다. 민간 기업 HE는 전기뱀장어의 생체전기 원리를 모방해 인공 발전 장치를 개발하고, 이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발표한다.

이 기술이 공개되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은 자신의 전기를 팔겠다며 속칭 '피카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연구소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참가자 일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를 겪으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문제는 HE가 전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체의 전해질 농도를 임의로 조절하면서 발생했다. 연구진은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신체 환경을 최적화한다는 명목으로 실험을 이어가지만, 참가자들은 극심한 피로와 신경계 이상을 겪는다. 일부는 심각한 건강 문제를 호소하며 쓰러지고, 결국 사망자가 발생하며 언론과 정치권, 산업계의 불법·비윤리 유착 관계가 드러났다.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체전류는 전자기 신호를 전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발전원으로 삼기에는 효율이 극히 낮다. 인간의 신체에서 발생하는 전압은 극히 미미하며, 이를 활용해 실질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같은 과학적 가능성보다는, 에너지 위기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희생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한편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구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제작한 영화답게, 인간 발전은 또 다른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SMR(소형 모듈형 원자로)도 은연중 강조했다.

주인공인 석훈(배우 김동원)은 SMR 연구자로, 인체 발전 기술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방안으로 SMR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발전기로 활용하는 극단적인 방식이 아닌, 검증된 신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간 발전은 에너지 부족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묻는 작품이다. HE가 제시한 생체 발전 기술과 SMR을 통한 안정적 전력 공급이라는 대조적인 접근법을 통해, 영화는 단순한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딜레마를 부각한다.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 전까지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뉴스1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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