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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가 경매 시장에?”...쏟아지는 부실PF, 초호화 주택도 공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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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200억대 ‘펜디 아파트’
브리지론 이자 지급 허덕이며
대출 연장 못하고 공매 내몰려

정부, 부실PF 정리 압박하고
건설사 법정관리사태 겹치자
은행 증권사 대출 규제 강화

우량 사업장까지 도미노 악화
향후 주택 공급에도 악영향


공매나온 부동산 2025.3.23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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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남의 초호화 하이엔드 주거시설로 화제가 됐던 ‘포도 바이 펜디 까사’ 개발 용지가 결국 공매로 넘어갔다. 당초 서울 강남구 논현동 114 일원에서 진행되던 프로젝트로 아파트 29가구, 오피스텔 6실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개발 업계에선 글로벌 명품 브랜드 펜디의 인테리어·가구 브랜드인 펜디 까사가 참여하는 것으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에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이 어려워지면서 작년 7월쯤 브리지론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상태가 됐다. 이후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C(부실 유의)’ 사업장으로 분류된 후 공매까지 내몰렸다.

최근 정부가 부실PF 구조조정을 위해 시중은행과 증권사 등에 PF대출 관리를 압박하면서 공매 시장에 경제성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평가받았던 사업장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 부동산PF 정보공개 플랫폼에 PF 정리·재구조화를 추진 중인195개 사업장을 공개한 후 지난달 28일 174개 사업장을 추가했다. 한 달여 만에 PF 정리 추진 대상을 두 배로 늘린 셈이다. 1차·2차 리스트를 모두 합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6조3000억원이다. 올해 신규 공매 신청이 급증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금감원이 공개한 목록을 보면 완공된 서울 주상복합아파트는 물론 대기업이 투자한 물류센터, 글로벌 기업 이케아가 한때 개발을 고려했던 용지가 대거 포함돼 있다.

월드건설이 완공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강남월드메르디앙프레스티지아파트(2022년 완공)’는 일부 가구가 공매 대상으로 포함됐다. 지하철 3호선·신분당선 양재역 초역세권인데도 완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GS리테일이 70억원을 투자한 ‘양주 광적물류센터’ 개발사업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원래는 지난해 8월 준공 예정이었지만, 부동산PF 경색이 심해지면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GS리테일, 미래에셋증권, 인트러스투자운용 등이 개발사업을 위한 특수목적회사(SPC)의 주요 주주인데, 사업비 삐걱거리면서 공매 시장으로 밀려났다.

이케아가 한때 점포를 지으려고 했던 계룡시 두마면 농소리 일대 용지도 공매로 넘어왔다. 이 밖에 부산도시공사가 진행하는 오시리아관광단지 내 일부 땅도 목록에서 찾을 수 있다.

굵직한 PF 사업장을 공매 시장으로 유도해 부실PF를 정리하면 땅값도 낮아지고 다시 사업이 굴러갈 것이란 게 금융당국 생각이지만 속도는 더딘 모습이다.

매일경제

부동산 PF 정보공개 플랫폼에 공개된 369개 사업장 중에서 155곳이 입찰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PF 사업장은 감정평가액을 기반으로 입찰이 진행되는데,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입찰 날짜도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가 PF 정리 대상으로 꼽은 사업장 중 매수 희망자조차 나타나지 않은 곳이 전체의 약 42%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매 시장으로 물건이 나와도 매수자와 판매자 의견이 맞지 않아 유찰이 거듭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개발 업계 설명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누적된 PF 정리·재구조화 실적은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권은 지난해 6월 사업성 평가 결과, 당시 C(부실 유의)·D(부실 우려) 등급을 받은 부동산PF 20조9000억원 중 9조3000억원을 작년 말까지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속도가 한참 늦은 것이다.

부실PF 정리가 질질 끌리면서 개발업계 고사 위기 우려는 커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비상계엄 이후 혼란한 정국과 함께 중견건설사의 법정관리가 줄을 잇자 은행들이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여 나갔고 이 과정에서 PF 등 리스크가 큰 건설업종 대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또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PF 채무보증의 위험가중치도 대폭 높이기로 하자, 개발 업계 ‘돈줄’이 완전히 봉쇄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 들어서는 작년 정부의 PF 사업성 평가 때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A(양호)·B(보통)등급도 상태가 악화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사업성 평가 당시 B등급을 받고 올해 초 본PF 전환에 성공한 세운 3-2·3구역도 지난해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좌초할 뻔하다 겨우 자금을 조달했다. 한 부동산 개발사 관계자는 “C·D등급은 부실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나 있지만 A·B등급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떤 지침도 내리지 않았다”며 “이대로라면 올해 말이면 PF 사업성 평가에서 C·D등급으로 하향 조정되는 사업장이 대거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멀쩡한 A·B등급 개발 사업까지 자금난으로 휘청이게 되면 결국 후폭풍은 향후 주택 공급 부족과 집값 상승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PF 정리 과정과 별도로 양호한 사업장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지금도 부동산PF 금리는 8~9%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며 “금융권에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데, 누가 공매 시장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인수하려고 하겠냐”고 주장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용도변경만 하면 사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공매 사업장도 상당하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러 노력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면서 “정부의 좀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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