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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fn광장]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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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지난 3월 23일 중국에서는 2000년 이래로 매년 열리는 "중국고위급발전포럼(CDF)"이 열렸다. 이 포럼은 중국 지도부가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자리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중 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미국 기업인들 중 과연 누가 이 포럼에 참석할지가 관심사였다.

총 86명의 글로벌 기업 CEO 중에서 45%가 미국 기업인이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미국 시총 1위 기업 애플의 팀 쿡 CEO를 비롯해 퀄컴, 화이자, 카길, 페덱스, 보잉 등 내로라하는 미국 기업 CEO들이 대거 참석했다.

코로나 이후 한국은 중국이 경제위기에 빠져 망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유는 스마트폰 세계 1위 삼성이 중국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고, 세계 3위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자동차사업을 접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카페베네, 롯데마트·이마트 같은 한국 대표 유통업체들이 모두 중국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은 여전히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1, 2위 점유율을 다투며 장사하고 있다. 미국의 GM, 포드, 테슬라 같은 자동차회사들은 중국에서 공장 뺀다는 얘기가 없다. 미국의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도 중국에서 장사 잘하고 있다. 스타벅스도 퇴출한다는 얘기가 없다. 월마트도 중국에서 문 닫았다는 얘기는 없다.

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하고 있는데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공장 빼고 문 닫고 나온다는 얘기가 없고 한국 기업들만 문 닫고 나왔다. 그리고 미국 기업 CEO들은 뻔질나게 중국을 드나든다. 테슬라, 애플 등의 미국 기업 CEO들은 입만 열면 중국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 규제를 더 강화하려고 하자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나서 반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중국 매출 비중이 20~70%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대통령부터 나서 첨단기술을 중국에 가져가지 말고 탈(脫)중국 하라는데 미국 CEO들은 들은 척도 않고 있다. 이유는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기기 때문이다". 지금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반도체장비, 전기차, 배터리 등의 첨단제품의 세계 최대시장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결국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고, 수요는 공급의 어머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세계 일류기업들을 불러들이고 이들 일류기업 기술의 낙수효과로 중국 기업들의 실력이 올라가는 것이다.

서방은 신산업, 신기술산업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허용한다고 하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서는 많은 행정제약과 이해관계자 집단의 반발로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은 애초부터 신산업, 신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규제 자체를 안 하고 이름 그대로 규제 샌드박스를 실시한다.

거기에 정부보조금을 사용해 많은 기업이 참여하게 해 시장을 키우고 생태계를 완성한다. 그리고 완전경쟁시장이 되면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기술개발과 발전을 이루는 동시에 경쟁력 없는 기업들을 도태시킨다.

생존한 기업들은 시장 과점화로 "살아남은 자의 축제"를 즐기고 생산 규모를 확장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세계적인 원가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러고 나서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 중국이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세계 1위로 부상한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공장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고 시장 가까운 데 지어야 한다. 한국은 바로 옆집에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전기차, 화장품시장을 두고 중국위기론만 반복하고 있으면 기회를 놓친다. 한국, 중국 위기론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탈(脫)중국"이 아니라 "진(進)중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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