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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나라 위해 쓸 만한 소리 하는 것이 나의 소명" [월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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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큰 부자'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의 청부(淸富) 정신

“노인 연령 75세로 상향해 인위적으로 숫자 조절해야 국가재정 부담 덜 수 있어”

“경로당 늘리고 외국인 돌봄인력 확충해 대한노인회 회원 600만 명까지 늘릴 것”

“기부는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는 것, 아이 낳은 직원에게 1억 포상 알아줘 감사”

“역사는 되새기는 것, 유엔데이 공휴일 지정해 6·25전쟁 때 유엔군 도움 기억해야”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부(淸富) 정신’을 설파했다. 수도사의 청빈한 삶뿐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의 행위에도 고결함을 입힌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근검 절제가 몸에 배어야 하며, 투철한 직업의식을 관철해야 한다고 긍정한 것이다. 큰 부자일수록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사상가적 면모를 비친다. 철학자 카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감화된 유대인 자본가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소로스는 “돈은 자유이자 권력”이라고 말했다. 금력(金力)에서 나오는 영향력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발상이다.

2024년 10월 21일 이중근(85) 부영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9대 대한노인회장으로 취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취임식에서부터 이 회장은 “노인 인구 관리를 위해 현재 65세인 노인 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75세로 높이겠다”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노인 연령 75세 상향, 유엔데이 공휴일 재지정 등 사회적 발언을 통해 대한민국의 과거와미래를 끊임없이 환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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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활로’를 테마로 잡고, 이 회장 측과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을 위해 3월 5일 부영그룹 본사 회장실과 임원실을 방문했다. ‘인테리어 같은 데 허투루 돈을 쓰지 않겠다’는 듯한 검소함을 뽐내듯 회사 분위기는 우리가 아는 대기업의 그것과 사뭇 달라 보였다. 부영그룹은 재계 순위 10위권(2017년 기준)의 대기업이지만, 상장조차 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지배력이 절대적이다. 2조6000억원(2017년 기준)에 달하는 자산가로 알려져 있지만, 꼼꼼함과 검소함은 변함없이 인간 이중근을 이루는 본질인 듯했다.

씀씀이에 관해 이토록 철저한 이 회장의 이미지는 놀랍게도 ‘1조2000억원 기부’라는 반전 이미지와 포개진다. 특히 최근 들어 ‘아이 낳은 직원에게 1억원’, ‘고향 마을 주민들, 초·중·고 동창, 군 전우·동기 등에게 1억원’을 나눠준 미담이 알려지며 사회적 울림을 줬다.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찬사까지 나왔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이 회장과의 대화는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긍정, 돈 철학까지 이어졌다.

이 회장의 답변 원칙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한다’인 듯했다. 이 조건에만 부합하면 그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정확한 숫자를 열거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내심 체력을 걱정했지만,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오히려 웃음이 많아지고 말수가 늘어났다. 특히 공군에서 복무 중인 손자 이야기가 나올 땐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미소가 만면에 피어났다.

■ 이중근 대한노인회장(부영그룹 회장) 약력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법학 박사

■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1992년~현재)

■ 부영그룹 회장(1994년~현재)

■ 건국대 이사장(1999년~2001년)

■ 한국주택협회 회장(2000년~2004년)

■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2003년~2006년)

■ 제17대 대한노인회장(2017년~2020년)

■ 제19대 대한노인회장(2024년~현재)



“75세까지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Q : 2024년 12월 한국도 65세 이상 노인 1000만 명(인구 비중 20% 이상)을 돌파했다. 2050년이 되면 노인 인구는 2000만 명이 된다. 막을 수 없이 도래하는 세상의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A : “노인이라는 존재의 가치부터 인정해야 한다. 노인은 희귀하기에 존경의 대상일 수 있었다. (다시 노인의 ‘희소성’을 되찾으려면, 노인 연령 상향을 통해)숫자를 줄이고 품위를 높이면 어떨까 싶다. 나이가 많아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어른다움으로 조금 더 품위 있게 우대받는 세상이 온다면 괜찮을 것 같다.”

Q : 노인의 기준선을 바꿔서(65세→75세) 그 숫자를 줄인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A : “근본적으로 노인이 적어질 수 없다면 기준을 올려서라도, 인위적으로 숫자를 줄일 순 있다.”

Q : 이 회장 공약처럼 65세가 더 이상 노인이 아니게 된다면 고령에 따른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다.

A : “노인의 경륜 자체가 밥을 먹여주진 않게 된다. 그러면 노인도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나. 정년을 현재처럼 60세, 65세 수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75세로 보도록 바꿔나가야 한다. 지금도 65세 넘어서도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생산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2024년 10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9대 대한노인회장 취임식에서 이중근(오른쪽) 회장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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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이후 피크 임금 떨어뜨리면 청년 반발 없을 것”



Q : 대한노인회장으로서 이미 이 회장 머릿속엔 큰 틀에서의 계획이 섰을 것 같다.

A : “정년을 65세에서 75세로 바꾼다고 치자. 그러면 66세가 될 때 기존 임금의 40%만 주고, 연 2%씩 줄여나간다. 그러면 10년이 지난 75세 때 (65세 정년 때 임금 대비) 20%가 될 것이다. 월급으로 500만원받았던 사람이라면 66세 때 40%인 200만원, 75세 때 20%인 100만원을 받게 될 것이다.”

Q : 그래도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A : “지금 보건복지부 기초연금이 34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75세를 주장할 터이니, 그쪽은 정년을 70세로 하더라도 계속 확대하는 쪽으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물론 노인 연령이 올라가서 기초연금 34만원을 못 받게 되면 불평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75세가 돼도 (일하면) 100만원 월급을 받을 수 있다. 34만원보다 66만원을 더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원치 않는 사람은 일할 필요가 없다. 나이가 많아서 쉬겠다는 사람은 놔둬야 한다. 다만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은 생산에 참여시키자는 생각을 말씀드린 것이다.”

Q : 이 회장의 제언대로 된다면 노인 인구가 얼마나 줄어들게 되나?

A :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아마도 연간 60만 명이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을 것이다. 10년이면 600만명이다. 기존 1000만 노인 인구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연 20만~30만 명 정도 나올 것이다. (노인 연령을 75세로 상향하면) 700만~800만 명 정도로 노인숫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 대한노인회장에 출마한 이유는 무엇인가?

A : “선거를 통해 직을 맡게 됐다. 노인 연령을 75세로 상향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는데, 많은 분이 동의했다. 그래서 취임사에서 ‘이러한 의제로 입법하고 앞으로도 추진하고 싶은데 동의해 주시겠나’라고 선언했다. 그러니 국무총리와 여야 양당 대표 대리들이 다들 동의하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지금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미소 지으며) 쓸 만한 소리 했다고 한 것 같다.”

Q : 사안에 따라 대한노인회와 정부와의 협의도 필요할 것 같다.

A : “지금 정부에서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기초연금 대상자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Q : 이 회장의 제언이 받아들여져 노인이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혹시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가 싫어하진 않을까?

A : “청년과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 조직 라인에서 정년이 된 이후부터는 피크 임금이 뚝 떨어진다. 월 500만원을 받던 사람이라면 정년 다음 해부터는 200만원으로 주는 것이다. 또 66세부터 75세까지는 조직 라인이 아닌 위원회 같은 전문직, 자문, 고문 등의 보직 위주가 될 것이다. 희망자에 한해서 간접적으로 생산과 지원에 기여할 수 있다.”

Q :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 건전화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A : “지금 정부의 노인 예산이 수십조원 단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출산 장려 예산도 비슷할 것이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일하는 노인 월급을) 회사 부담 50%, 국가 부담 50% 식으로 한다면, 현재 예산 수준으로도 미래 대응이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

Q : ‘늙어도 유능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도 필요할 듯하다.

A : “집에선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나 비틀거리는 할아버지도 대우를 잘 받는다. 우리 사회도 가정에서처럼 그렇게 일하는 노인들을 공경해주면 좋겠다.”

Q : 이 회장의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미래의 노동 현장은 사뭇 다른 그림이 떠오른다.

A : “꼿꼿이 서서 일하는 군상과 약간 꼬부라진 채로 일하는 노인 군상이 동시에 공존할 것이다.”



“경로당, 두 배 늘릴 것”



Q : 취임식에서 재가(在家) 임종제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A : “옛날에는 장례와 임종이 아주 큰일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가족이 다 모였다. 상여, 운구 등 절차가 많았다. 현재 노인 인구가 2000만 명으로 늘어가고 있다. 생을 마감할 때 가족과 함께 집에서 임종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드린 것이다.”

Q : 평소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이 많은 듯하다.

A : “태어날 때 축하하고 좋아해 주듯 떠나는 순간에도 최소한의 예우 정도는 갖춰야 한다. 운명하신 분들은 대개 집안의 어른일 테니까.”

Q : 이렇게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는 데에는 이 회장 나름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A : “평소에 생각한 바를 기회가 주어지니 표현하게 됐다.”

Q : 노인정을 늘리기 위해 기부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A : “(노인정이라는 단어를 바로잡으며) ‘경로당’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노인회 가입 회원이 300만 명이 채 안 된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은 1000만 명이다. 모든 단체는 대표성을 가지려면 50%를 넘겨야 한다. 그러려면 대한노인회도 지금 30%에서 두 배로늘린 600만 명은 가입해야 한다. 경로당 숫자가 현재 6만8000개 정도인데, 14만 개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간호대학을 설립해 한국의 돌봄 인력을 양성하는 구상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

A : “그분들이 우리보다 인건비가 싸다. 또 현재 한국의 5000만 인구 중 노인이 2000만 명, 중간생산연령이 2000만 명, 어린이가 1000만 명이다. 생산인구 2000만 명이 노인 2000만 명을 돌보는 구조라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된다. 결국 해외에서 들여오는 길밖에 없다. 마침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우리와 생김새도 비슷하다.”

2025년 2월 27일 이중근(왼쪽) 대한노인회장은 부영그룹을 찾은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해 저출생 추세 반전에 기여했다. [사진 부영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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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도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됐다고 하더라”



Q : 지난 2월 2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어떤 기분이었나?

A : “높은 관료분이 오셔서 많은 후보 중에서 저에게 감사장을 준다고 하시니 고맙게 받았다.”

Q : 출산율이 바닥을 찍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A : “그런 것 같긴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나아지길 바란다.”

Q : 부영 직원들에게 자녀를 낳으면 1억원(세후)씩 지급한 것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몰고 왔다. 어떤 배경에서 출발한 생각인가?

A : “받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1억원을 주면 이야기가 (받아들여지기) 쉬울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Q : 합계출산율 1.5명을 찍을 때까지 기부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A : “(웃으며) 힘들긴 한데, 지켜야지.”

Q :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부영 입사 지원자가 5배 늘었다는 뉴스도 있더라.

A : “몇 배인지는 확실히 몰라도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일본 언론들에서도 보도했고,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미군들이 ‘나도 부영그룹에 입사할 수 있느냐’라고 농담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웃음).”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1억원의 출산장려금을 선물할 때,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다시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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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부영그룹 회장실의 회의장에 큰 액자 사진이 걸려 있더라. 이 회장이 출산 직원, 아기들에게 둘러싸여 할아버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A : “옛말에 ‘손자를 자랑할 때에는 밥 사 가면서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그날 나의 친손자들은 아니었지만, 우리 회사 식구의 손자들을 보니까 참 기분이 좋았다.”

Q : 지금까지 1조2000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A : “계획을 세우고 기부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임대주택 사업을 시작할 때 통상적으로 (임대주택이) 도시 변두리에 있어서 학교와 멀었다. 그래서 교육청과 협의해서 학교를 지어주니 임대주택 장사도 잘 됐고, 아이들 학교 가기도 좋게 됐다. 그렇게 기부가시작됐다. 언젠가 회사에서 (기부액을) 모아 보니까 1조2000억원까지 된다 해서 ‘꽤 많이 했구나’ 싶었다(웃음).”



“물처럼 흐르는 재물을 가장 잘 놓아두는 방법이 기부”



Q : 기부할 때 어떤 마음인가?

A : “우리가 배고플 때 밥 먹는 것과 비슷하다. 꼭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Q : 이 회장의 ‘돈 철학’과 기부는 궤를 같이할 것 같다.

A : “재물은 없으면 꼭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있는 것도 낭비다. 영원한 절대 소유도 불가능하다. 재물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 나처럼 나이 들게 되면 어떻게 놓아두고 가야 가장 잘하는 것인지를 찾게 된다. 기부는 잘 놓아두는 방법 중 하나다.”

Q : 평소에는 검약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회장이지만, 유독 기부할 땐 통이 커진다.

A : “기부도 검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밥도 (적정량보다) 많이 먹으면 살찌듯 돈도 필요한 만큼만 쓰면 된다. 적재적소, 적정이 내 삶의 모토다.”

Q : 고향 순천의 마을 분들, 학교 동창들, 군 동기·전우들에게 1억원씩 기부한 것으로 또 화제가 됐다. 어찌된 연유로 이뤄진 일인가?

A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누군 받고 누군 못 받는) 시샘이 원인이면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한다. 그래서 금융치료 요법을 내가 한번 선택해봤다(웃음).”

Q : 당초 계획보다 지출이 너무 커진 것 아닌가?

A : “일례로 처음에 주기로 한 동창이 70명 정도 됐다. 그런데 동창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거나 그동안 아무 소식도 없었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170명으로 늘어났다. 동창들이 미안해하며 ‘우리가 알아서 재분배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럴 순 없다. 그냥 똑같이 다 해주겠다’고 했다. 70억원이 170억원이 됐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Q : 이 회장은 〈6·25전쟁 1129일〉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서 5종을 집필했다. 역사를 알리려는 소명의식의 원천은 무엇인가?

A :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과거를 찾았다. 사회, 문화, 문학도 역사서에 근거한 것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찾아보게 되더라. 직접 다 쓰진 못했고, 주위 도움도 받았다.”

Q : 기본적으로 이 회장의 역사관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긍정이 깔려 있는 듯하다.

A : “조선 말을 보면 자괴감도 든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보면 비참하고 처량한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은 투지를 잃지 않고 현재를 일으켰다. 6·25전쟁으로 아주 힘들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들어가는 나라가 됐다. 인구는 5000만 명이 됐고, 70년 이상 휴전선을 지키며 생존해 있다. 이스라엘은 싸우면서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키면서 살아 있다. 해외에도 750만 동포가 있으니 우리 인구는 거의 6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렇게 열심히 잘 사는 민족은 없는 것 같다.”

Q : 이 회장은 10월 24일 유엔데이를 공휴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 :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남침한) 북한 인민군에 대해 6월 25일 82호로 철수를 결의했고, (북한이) 안 들으니까 6월 27일 84호로 참전을 결의했다. 이후 국군은 6월 27일 유엔군으로 전부 편입됐다. 맥아더 사령관은 7월 7일 취임했다. 참전국이 22개국이나 됐다. 백선엽 장군도 유엔군 소속으로 다부동 전투를 이끌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존재가 그 덕분에 만들어졌다. 지금 여당이고, 야당이고 유엔군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에 감사하고, 동방예의지국으로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아니냐는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다.”



“6·25전쟁의 처참함 새기려면 유엔군 기억해야”



Q : 국군의날과 별도로 유엔데이를 기념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A : “10월 1일 국군이 38선을 돌파했다고 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유엔군이다. 국군은 유엔군 소속으로 국군 사단이 넘어간 것이다. 유엔데이는 1975년까지 휴일이었지만, 1976년부터 폐지됐다. 이후 1991년 9월 17일(한국시간 18일) 남북이 유엔 동시 가입을 발표했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 하고,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북한도 그 나름대로 통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서로 통일을 원한다면서)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지금은 모순적인 면이 있다. (분단 상황인 지금까지도 일정 부분) 유엔군의 도움에 의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Q : 일부 젊은 층들은 6·25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조차도 헷갈려하는 실정이다.

A : “우리를 위해 전선에서 싸우다 죽은 유엔군이 4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현재 부산 남구 대연동의 유엔군 묘지, 용산 전쟁기념관의 참전비 정도만이 유엔군을 기념하고 있다. 유엔군은 북으로 침략하기 위해서 전투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침략 이후 방어를 위해서 온 것이었다. 과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하는 차원에서 유엔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감사함의 표현은 결국 외교적 발판으로 돌아올 것이다.”

Q : 갈수록 6·25전쟁이 잊힌 전쟁처럼 묻혀가는 사회 분위기다.

A : “이미 잊힌 전쟁이 됐다. 우리 세대는 사람이 죽는 현장을 봤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이나 영화로 보니 실감을 못 한다. 친인척이나 지인이 실제 죽는 장면을 보는 처참함을, 지금 세대는 역사책으로 봐서 별로 상상을 못 할 것이다. 겪어본 입장에서 그런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Q : 이 회장이 군부대에 유독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작동한 것이겠다.

A : “자기 할아버지 이름을 기억하듯 역사도 되새겨서 알고 있어야 한다.”

Q : 부영그룹의 기부로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내 참전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들었다. 이 참전비는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해 2015년 설치됐는데, 예산 한계에 직면했을 때 이 회장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 “용산에 갔을 때 참전한 유엔군 22개국 국기를 보고 관계자에게 ‘이건 너무하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근사하게 월계관을 만들어 붙이고 싶다며, 개선하려고 했는데 스폰서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후원을 한다고 해서 고쳤고, 이제 자기 나라 국기 앞에서 예의를 갖출 수준은 된다.”

필리핀 출신 6·25 참전 용사의 손자가 부영그룹이 제작·설치, 기증한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설치된 참전비 앞에 섰다. [사진 부영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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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부영그룹은 2010년 이 회장의 아호인 ‘우정’을 딴 우정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한 뒤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그중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외국인 용사 후손들도 포함돼 있다. 공군 출신인 이 회장은 군 복무 시절 밥값이라며 공군 하늘사랑 장학재단에 10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공군은 이 기부금을 공군 유가족의 생활지원금, 장학금으로 활용해달라는 이 회장의 뜻에 따라 쓸 방침이다.



“농촌은 사라지지 않을 것”



Q : 부영그룹의 본질은 건설회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로 부동산 값이 내려간다면 그룹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은가?

A :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회사가 이익을 보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계속 올라가면 편하긴 할 것이다(웃음). 하지만 주택 보급률은 거의 100%에 도달했다. 이제 주택 수명에 비례한 재건축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주택 수명 40년을100년으로 개선하고 향후 100년 동안 2000만 호가 재건축된다면, 1년에 20만 호가 될 것이다. 노후화된 재건축은 계속 필요할 것이다. 주택사업이 없어질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 20만 호 중 20분의 1인 1만 호 이상만 공급해도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

Q : 지방소멸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부영도 무심할 순 없는 것 아닌가?

A : “지금 우리 회사를 걱정해주는 것인가(좌중 웃음)? 순환 과정이다. 농업 인구가 줄어들면 도시 인구가 많아진다. 하지만 농촌도 일정한 인구는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노인들이 많은 것 외에도 농촌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꽤 있다. 농지가 그냥 묵혀지진 않을 것이라 본다. 도시:농촌 비율이 지금 거의 85:15 정도로 돼 있을 텐데, 농촌에도 거점지역이라는 것이 있다. 그 인근 농업은 향후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농촌이 피폐해져 서울로 다 모이는 극단적 현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김영준 월간중앙 취재팀장 kim.youngjoon1@joongang.co.kr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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