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숏폼에 중독된 사회]
뇌 충동조절 부위 활성화 반응
청소년-아동, 중독에 더 취약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오비이랩 사무실에서 만난 최종관 연구개발(R&D) 본부장은 숏폼과 롱폼을 볼 때 본보 기자 두 명의 뇌를 관찰한 결과를 보며 말했다. 이날 기자의 뇌를 들여다본 기기는 오비이랩이 개발한 ‘널싯(NIRSIT)’이다. 널싯은 뇌에 근적외선을 쏴 혈액이 몰리는 부위를 확인하는 근적외선분광법(fNIRS)을 활용한 측정 기기다. 혈액이 몰린다는 것은 그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비이랩은 2013년 KAIST 연구실 창업을 통해 설립된 뇌 영상 장비 개발 스타트업이다.
이날 실험에 참가한 두 명의 기자는 스키 고글처럼 생긴 널싯을 머리에 쓰고 ‘1분(휴식)→3분(롱폼)→1분(휴식)→3분(숏폼)→1분(휴식)’ 순서로 실험을 진행했다. 롱폼 콘텐츠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을 활용했다. 숏폼 콘텐츠로는 각자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서 추천해주는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인 유튜브 쇼츠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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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결과, 두 참가자의 뇌에서 동일한 반응이 포착됐다. 전전두엽 부위의 중전두회(middle frontal gyrus), 위이마이랑(superior frontal gyrus)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평소보다 활성화됐으며, 숏폼을 볼 때 가장 크게 활성화됐다. 이 부위는 계획, 문제 해결, 조직화 등 집행 능력과 충동 조절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실험 결과를 확인한 최민이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숏폼을 볼 때 인지적, 감각적 기능이 강하게 자극됐으며, 뇌가 집중력과 인지적 자원을 더 많이 활용하도록 유도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상〉 숏폼 vs 롱폼 비교
숏폼 볼때 인지-감각기능 활성화
더 강하고 빠른 즐거움 찾게돼
복잡한 정보 처리 능력 약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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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면 볼수록 내성 생겨 더 강한 자극 찾게 돼
물론 뇌가 빠르게 활성화되는 것을 무조건 나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만큼 뇌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숏폼을 교육이나 유익한 정보 전달에 활용하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문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들이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 맞춤형 숏폼 영상만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이렇게 노출되는 영상의 대다수는 평소 사용자가 재미를 느꼈던 자극적인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자극이 지속되면 뇌에는 일종의 ‘내성’이 생긴다. 내성이 쌓이면 기존의 자극보다 더 큰 자극이 와야 활성화가 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극이 적은 평상시에는 뇌의 활성이 떨어져 있게 된다. 마치 일시적으로 활력을 얻기 위해 자양강장제를 매일 마시다 보면 나중에는 자양강장제 없이는 체력이 더 떨어져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게임 중독자들의 뇌를 관찰해 보면 일반인에 비해 전두엽 부위의 활성이 매우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긴 시간 주의를 요하는 복잡한 정보 처리 능력이 약화되고 충동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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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윤 용인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직 숏폼이나 SNS 과의존은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단정지을 수 없지만, 학계에서는 다른 행위 중독과 비슷한 경로(메커니즘)로 중독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즉, 숏폼 중독 역시 전두엽의 활성화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 추천 알고리즘이 중독에 더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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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따르면 참가자의 70%는 틱톡을 최소 1년 이상 사용했으며, 46.7%는 매일 틱톡에서 숏폼을 시청하는 데 1시간 이상을 소비한다고 밝혔다. 실험 결과 추천 알고리즘 영상을 볼 때만 ‘복측 피개 영역(VTA)’ 부위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됐다. 무작위로 영상을 볼 때는 이 영역이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다. 복측 피개 영역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 분비에 관여하는 보상 회로를 구성하는 뇌 부위다. 기쁨,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호르몬이지만 과도하게 자주 분비될 경우 특정 행동을 강화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중국 연구진은 “추천 알고리즘이 동영상 시청 행동을 강화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것을 시사한다”며 “과도한 숏폼 시청을 일으키는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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